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그 자신이 희망이다 // 길 찾는 사람은/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 // 다시/사람만이 희망이다”(박노해, 「다시」 전문)
또 한 해가 지나갔다. 특히, 후배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주어야 했던 지난 일 년은 내게 조금은 남다른 한 해였다. 그 남다른 감정에는 일종의 고통스러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20여 년 전의 내 모습을 지속적으로 떠올려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독서의 가치는 누구나 쉽게 인정하고 또한 책을 읽는 행위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통계조사를 끌어 대지 않더라도 실제 우리나라의 독서량이 아주 적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누구나 인정하고, 또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이 되어 버린 독서를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의미를 찾는 일이 가장 급선무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은 별다른 정답도 주어져 있지 않고, 기간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할 수 있다. 지난 일 년이 내게 고통스러웠던 것 역시 20여 년 전 스스로 겪었던 그 과정의 어려움과 절망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고, 또한 선배가 되어서도 후배들이 겪고 있을 그 고통을 전혀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분쟁 지역이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담은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인 박노해는 잘 알려진 대로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통해 우리의 현실 그대로인 노동의 현장을 직접적인 시를 생산하는 배경으로 끌어들인 ‘시인’이었다. 그의 시 덕분에 우리 시문학이 사회 현실과 한층 더 살을 맞댈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문학적 형상화를 위해서 선택하는 현실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거기에 직접 뛰어든 ‘노동자-시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시대적 선구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현실과 불화를 일으키고, 오랜 도피 생활 끝에 1991년 결국에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이 책은 당시 ‘무기수-시인’인 박노해의 옥중 구술과 메모들을 토대로 간행된 에세이집이다.
억압적인 독재 정권과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자본주의에 결연히 반대하다가 마침내는 영어(囹圄)의 몸이 된 한 사람이, 그 안에서 사회주의의 현실적 몰락과 민주적 정권의 수립을 목격하게 된다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기꺼이 바뀐 현실에 순응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자신이 바라던 현실은 도래하지 않았다고 새롭게 맞추어 내놓은 자신의 논리를 부르짖어야 할까. 아마도 이 책이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어찌 보면 이와 같은 대중적인 호기심이 일차적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박노해의 책을 읽다보면 이같은 우리의 상상 그 자체가 바로 시인이 그토록 바꾸고자 원했던, 모든 ‘인간적’인 것을 억압하는 체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체제 안에서는 항상 다시 ‘체제’를 꿈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이 꿈꾸었던 것은 새로운 체제나 새로운 정권이 아니라 그저 사람 모두를 ‘사람’답게 만들 수 있는 ‘희망’ 그 자체이다. 마치 책을 읽는 행위가 그 어떤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박노해 시인이 시쓰기를 자신의 가장 적극적인 사회적 행위로 선택했듯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믿는 한 독서가 항상 우리를 그 희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