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언제나 듀스 포인트


인류가 창안한 문명, 철학과 예술, 과학과 종교, 환경보존 등의 대척점에는 거의 같은 분량의 전쟁과 학살, 침략과 정복, 편견과 오만, 범죄와 폭력, 무지와 야만, 환경오염 등이 자리하고 있다. 세끄라탱은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류의 시스템은 이제 과부하 상태가 되었으니 지금이 바로 결판을 내야 하는 때라고 역설한다. 다수의 인류에서 소외된, 즉 ‘세계가 깜박한’ 존재인 주인공들은 세끄라탱의 지도로 탁구에 매진한다. 이들 앞에 어느 날 핼리혜성처럼 커다란 탁구공이 나타나 지구에 안착한다. 그 순백의 공간에서 탁구계의 생물체로 변한 세끄라탱의 주재로 그들의 첫 공식게임이자 지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탁구경기가 시작된다. 인류로부터 배제된 존재들과 인류의 대표들 간의 게임이다.
'안심해. 안심해도, 좋아.’ 책의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안심하라고 말하던 박민규는 인류를 소멸시켜 버린다. 물론 책 ‘핑퐁’에서. 그러고는 끊임없이 “왜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고 자문하게 만든다. 두 명의 중학생이 있다. 나는 ‘못’이고 친구는 ‘모아이’다. 물론 별명이다. 머리를 얻어맞는 모습이 못을 치는 것 같아서 ‘못’, 큰 머리가 남태평양 어느 섬에 있는 석상을 닮아서 ‘모아이’, 두 명은 한 세트다. 세트로 치수 패거리에게 맞는다. ‘치수’는 폭력과 약탈, 심지어 원조교제까지 시키는 인물이다. 악하다는 단순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못과 모아이는 삥을 뜯기고 맞으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치수에게 얻어맞은 어느 날 못과 모아이는 빈 공터에서 탁구대와 소파를 발견한다. 그리고 탁구를 친다. 탁구 용품을 구하던 중 이들은 쎄끄라탱을 만난다. 쎄끄라탱에 의해 이 두 명의 중학생은 지구의 운명을 걸고 탁구경기를 하게 된다. 상대는 음식이 공급되면 기계적으로 탁구만 치도록 훈련된 새와 쥐. 새와 쥐는 인류의 대표다. 그럼 못과 모아이는? 세상을 끌고나가는 2%에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나머지 98%에도 들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 자체를 ‘깜박’한 인물인 셈이다. 경기 결과는? 못과 모아이 팀이 이긴다. 점수는 낮았지만 새와 쥐의 과로사 탓이다.
모아이는 탁구 경기 전 인류가 거쳐 온 모든 과정을 보았다. 학살, 전쟁, 문화, 철학, 예술…. 망설임 없이 결정한다. ‘언 인스톨!’ 박민규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그렇게 살지 마’라고 얘기하다가 ‘카스테라’에서 ‘니들 그렇게 살면 카스테라로 만들어버린다’고 경고했다가 ‘핑퐁’에서 드디어 ‘내가 경고했지?’ 그러면서 인류를 없애버린다.
핑퐁은 줄거리로 얘기할 수 없는 소설이다. 한 없이 단순한가 하면 끝없이 복잡하다. 소설은 일종의 액자소설 형식을 띤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가상의 작가 ‘존 메이슨’의 소설들을 넣었다. 존의 유작으로 등장하는 ‘여기, 저기,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깜박’에 관하여. 쉰을 넘긴 남자가 아주 사소한 것들, 예컨대 ‘전등을 끄고 나왔나? 가스는 잠갔나?’에 대해 ‘깜박’하는 자신을 본다. 그렇게 하루를 ‘깜박’ 속에 보낸 그가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도착. 장 본 것을 문 앞에 두고 차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 차가 없다. 다시 돌아보니 집도 없다. 텅 빈 공간에 혼자 서 있다. 그는 세상을 ‘깜박’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깜박’한 것은 아닌가? 세상이 깜박한 인물인 주인공 ‘못’이 주로 경험하는 것은 배제다. 소외가 아닌 배제. 모든 세상이 다수결에 의해 움직이고, 다수결이 만든 것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다수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다수가 원하는, 다수가 결정하는 방식에 따라 조용히 살아간다. 다수인 척 하면서. 그래서 가끔은 ‘내가 왜 살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뭔가에 이끌려 사는 것은 아닌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건 아닌지를, 박민규는 인류가 생존해 온 것이 아니라 잔존해 왔다고 생각한다. 만약 생존한 게 맞는다면 60억 중 누구 하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우리가 대체, 왜, 살고 있는지를.’ 그런 박민규에게 ‘박민규식’으로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