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권력, 그 진부한 상상력에 대해 <후궁>
「후궁: 제왕의 첩」은 비극이다. 비극의 씨앗은 바로 사랑이다. 왕의 계비가 된 화연에게는 사가시절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게다가 그 남자는 그녀의 집안에서 거둬 키워 준 업둥이이다. 사주단자를 넣기 전, 그녀는 업둥이 권유와 도망을 친다. 하지만 곧 발각이 되고 화연은 권유의 목숨만을 살려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입궐한다. 그의 남편이 된 왕은 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런데, 왕은 독살된 것이며 그 배후에는 이복 동생의 어머니인 “대비”가 있다. 더 문제적인 점은 새롭게 왕이 된, 성원대군이 바로 그녀, 화연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약된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후궁: 제왕의 첩」은 우리가 궁중비사라는 이름으로 접해왔던 수많은 사극들을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친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왕을 독살하는 이야기나 홀로 된 형수를 탐한 왕의 이야기는 야사의 일부로 수없이 서사화 되어 왔다. 왕을 사로잡아 권력을 쥐고자 했던 여성들 역시 장희빈을 비롯해 여러 명의 인물들이 다뤄졌다. 그러니까 「후궁: 제왕의 첩」은 지금껏 우리가 “사극”이라는 서사형태로 즐겨왔던 대개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새롭거나 달라진 점은 영화의 미술적 접근에서 발견될 수 있다. 「후궁: 제왕의 첩」은 특정한 시대를 지칭하지 않고 여말선초라는, 다소 추상적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여말선초라는 배경도 암묵적일 뿐 고증적 자료를 따른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영화 속 의상이나 배경이 되는 공간미술은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표독스러운 대비는 「천녀유혼」에 등장하는 요괴처럼, 흉중에 욕망을 숨긴 중전은 겹겹이 껴입은 한복의 저고리로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말하자면, 이 모든 것들은 “욕망”이라는 추상어를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장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눈 먼 “욕망”이란 무엇일까? 영화 속 욕망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왕의 욕망 곧 사랑이다. 왕은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또 가질 수 있기에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단 하나를 욕망한다. 화연을 사랑하는 게 먼저인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인지 불분명한 경계 위에서, 왕은 끝까지 그녀에 대한 욕망을 놓지 못한다. 두 번 째 욕망은 권력이다. 대비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어 그 권력의 그늘을 마음껏 맛보고자 한다. 세 번 째 욕망은 바로 생존이다. 절체절명의 권력 싸움 앞에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생존이다. 화연은 생존을 위해 다른 모든 욕망을 수단화한다.
왕에게만 성욕이 허락된 공간, 그를 통해 모든 권력이 창출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궁의 욕망’은 종종 영화의 무대가 되어 왔다. 김미정 감독의 「궁녀」 역시 비슷했다. 그런 점에서, 「후궁: 제왕의 첩」이 보여주는 욕망의 무대는 그다지 신선하거나 새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의 현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아홉 폭 치마로 복잡한 심경을 묘사해 낸 의상이나 미술도 「스캔들: 남녀상열지사」나 「음란서생」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후궁: 제왕의 첩」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정사 장면의 개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승 감독은 노출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욕망의 서사를 펼쳐내는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정사를 선택한다. 야하다거나 과하다기 보다 상황을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처럼 정사는 환유된다.
김대승 감독은 “성”이 곧 권력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출발점이었던 권유가 “성”을 잃고 내시가 되자 그는 남성성뿐만 아니라 권력도 잃는다. 영화 속 여성들도 모두 자신의 성을 이용해 권력을 얻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성”은 가장 강력한 무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장점이 「후궁: 제왕의 첩」이 가진 단점을 상쇄하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성과 권력이라는 주제 자체가 이미 진부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