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자비심을 청하며 진정한 자비를 묻다.

 올해는 유난히도 꽃들이 일찍 피었다. 꽃이 피는 시기를 앞으로 당기고 뒤로 밀수 없듯이 꽃이 지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세월호의 탑승객들이 바닷속으로 꽃잎처럼 떨어졌다. 그리 일찍 봄꽃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아마 차가운 바닷속에서 생명을 마감할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기라도 한것 같다. 그들은 2014년의 벚꽃처럼 일찍 피고 일찍 져버렸다.

 그날은 군산대의 벚꽃비들 사이로 부활달걀을 들고 장애인복지관수녀님이 연구실을 방문하였던 날이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수녀님은 짧게 인사하였다. 그 짧은 인사가 가슴에 꽂혔었다. 당신은 진정한 부활속에 사시는지요? 당신은 어려운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지요? 하는 물음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수녀님은 군산대 학생들의 많은 봉사활동을 언급하시며 예쁘게 포장된 부활달걀을 주셨다. 연구실 선반위에 부활달걀이 나를 바라보며 있다. 그날 부활달걀을 받던 그 시간, 시누시아 원고글을 요청받은 그날, 바로 세월호 참사가 시작되었다. 그 평범한 날 나는 뉴스를 보며 살아있을 생존자를 위해 주님의 자비를 청하였다. 단 한명의 생존자라도 찾아 구조할 수 있기를, 유속이 빠르고 배에 진입하기 힘들다 하여도 단 한명의 꽃잎같이 여린 생명을 구조해 내기를...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누나, 언니와 오빠들은 생존자를 위한 자비를 그들이 믿는 신께 청하고 국가의 신속한 구조를 믿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2014년 4월 30일 14일이 지난 지금 우리에겐 자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수많은 세월 공허한 재난시스템과 공무원의 탁상공론을 눈감아 준 우리에겐 자비가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묻는다. 우리의 자비심이 진정 자리할 곳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았을까? 

   
 

재난은 늘 우리와 함께 살기에 우리는 구조대책본부, 훈련된 구조요원 등의 재난대책시스템으로 재난에 맞서왔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사회곳곳에서 무엇을 쌓아왔는지를 보여주었다. 재난에 맞서 체계적인 대응과 죽음을 불사한 구조가 아닌 관행, 보신, 비리, 무사안일, 태만, 무책임, 회피만을 보았다. 참사의 사건도 무능한 구조도 모두 우리 스스로 블록처럼 맞추어놓은 기성세대의 자화상이었다.

정치를 나의 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정부의 활동을 그저 그들만의 리그라 생각하는 수많은 기성세대가 그 대가를 젊은 학생의 주검으로 확인하는 이 참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먼저 우리들의 속죄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국민전체의 참회와 애도의 눈물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다면 진정한 대한민국의 부활은 어디서도 기대할 수 없다. 반성과 함께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제하는 국민의 행동이 요구된다. 세월호 참사는 수백의 생명을 잃으며 정치와 정치적 행위가 결국 내 이익과 생활로 귀결된다는 가슴을 찢는 경험이다. 대한민국이 진정 모두가 믿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위해선 우리모두 나의 일이 아니면 모두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소시민적 태만을 벗어버리고 정치와 제도의 혁신에 대한 깨어있는 태도와 살아 숨쉬는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나의 부모, 나의 아들딸들이 재난의 덧에 걸릴지 모르지 않는가. 이제 주님께 자비를 청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 자비를 취할 자세를 만들고 행동할 때가 아닌가 한다. 선반위에 있는 부활달걀이 오늘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너의 부활과 자비를 준비하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