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 프란츠 카프카

몇 번의 클릭으로 ‘장바구니’에 책이 담긴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신상품’을 구매하지 않은 것이 옳은 판단일까. 과연 나의 삶은 독서를 통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 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읽다보면 그들의 인생에 대한 빛나는 노하우를 통해 우리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항상 장밋빛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게 될까. 신상품을 ‘득템’했을 때의 만족감 보다 더한 기쁨을 누리면서?

하지만 카프카를 읽는다는 것은 그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환기한다. 그것은 오히려 저 유명한 소설 「변신」에서 그저 평범한 사무원이던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커다랗고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것처럼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한 끔찍한 사건들의 가능성으로 가득 찬 공포스러움 그 자체임을 깨닫게 한다. 체 게바라가 그런 것처럼 카프카 역시 팬시 상품들의 캐릭터처럼 소비되기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카프카적’이라는 말은 보편성이 제거된 일종의 진공상태를 수식하는데 쓰인다. 따라서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믿는 삶의 구성방식이나 기준이 철저하게 파괴된 카프카의 소설들은 그 자체로 끝없는 질문이 된다.

   
 
「소송」의 경우는 또 어떨까. 주인공 요제프 카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방에 불쑥 들이닥친 남자들에 의해 체포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은행원인 주인공의 일상을 흔들어 뒤바꾸어 놓는다거나 일상의 완전한 정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체포되었다지만 구금의 상태가 아니며 직장인 은행에도 그대로 나갈 수 있으며 일을 하는 데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다. 그저 간단한 심문들이 이어지는 소송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것도 마치 나들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말을 이용해서 말이다.

이렇게 「소송」의 주인공은 체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겉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삶을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는 체포의 혐의가 무엇인지 또 소송의 과정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지 소송의 전모를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지금 소송이 진행되는지 아닌지조차도 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숙부가 유명한 변호사를 소개시켜 주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변호사 역시 소송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며 문제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거나 주인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뿐이다. 따라서 시시각각 진행되는 소송의 절차들을 주인공이 제대로 준비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카프카의 소설들은 이처럼 일상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오히려 그 상황을 지속시키는 유일한 원인이 되는 이해불가능한 상황에 우리를 몰아넣는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은행 업무란 마치 법원이 인정하고 있고, 소송과 연관되어 있으며 소송에 부수되는 일종의 고문 같은 게 아닌가?”(142쪽) 라고 느끼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평안했던 일상 전체를 의심하고 질문하게 된다.

이제껏, 우리들은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왔고, 또 앞으로도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에 독서 역시 자연스럽게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중의 하나로 여겨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질문들이 정답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심지어 답을 찾는다고 해도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짐짓 해답 찾기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답이 없는 황무지의 공간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소설이 일종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제 카프카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것인지는 철저히 독자의 몫이다. 다만 답이 없는 질문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카프카적’ 세계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