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시대?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소통을 말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원은 ‘나눔’과 ‘공유’를 뜻하는 라틴어 'communis' 에서 유래한다. 인간은 소통(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타인과 의미(가치)를 나누고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적 상호작용의 삶을 살도록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사람과 삶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갖고 태어난 사회적 존재다. 그런데 소통은 ‘누구나’ 하고 있지만, ‘아무나’ 다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소통은 인간생활에서 멈출 수 없는 호흡과도 같다. 어느 한 부분 막힘없이 물 흐르듯 잘 흐르게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인간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커뮤니케이션으로 꾸려진다. 그런데, 홍수와 같이 밀려드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통(通)’하고 사는 걸까? 물리적으로 말이 오고 간다고 해서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고 정보와 지식을 원활히 주고 받으며, 감정이입(empathy)이 이루어져 공유(공감)해야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금 진정한 의미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말은 많으나 진정한 소통이 없는 세상, 그래서 요즘처럼 ‘소통’이라는 말이 사회적 화두가 되어 유행한 적이 있었던가? 모두가 소통을 해야 한다고 아우성들이다. 모두가 열을 올리며 소통을 말하고는 있지만, 세상 어느곳, 어느 분야를 둘러보아도 뻥 시원하게 뚫려 소통되는 원활한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불통의 현실이 오늘이다. 작게는 부부, 부자 등 가족간에도, 동료 간, 더 나아가 노사 간, 정파 간, 권력 간, 남북 간, 종교 간, 국가 간 어느 한 곳도 막힘이 없는 곳이 없다. 소통이 만사형통의 첫 단추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고, 듣기 싫은 말에는 아예 귀를 막아버리는 아주 고약한 습관이 몸에 배어 소통을 막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그릇된 선택적 지각‘을 벗어나지 않으면, 불통의 장벽은 영원히 허물 수가 없다. 모든 사회가 바라고 꿈꾸는 소통하는 사회, 막혀 있는 소통의 문을 열기 위해 기술과 기법 등 자신의 이익이나 투쟁을 위한 소통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자! 그리고 진정 추임새 넣는 열린 마음으로 ‘공감과 화합’을 이루는 열린 소통의 사회를 이루어 가자. 정치의 계절, 제발 소통의 리더십이 발휘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