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앓고 있는 것이 정말로 청춘인가.
언제부턴가 20대에 관한 신조어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 신조어들은 20대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활력을 잃고 우울하고 비관적인 시선이 들어차 있다. 나이가 들도록 독립하지 못하고 계속 집에 의지하려는, 독립성 결핍의 ‘캥거루족’, 학력저하를 의미하는 ‘이해찬 세대’, 경제난을 의미하는 ‘IMF세대’, 취업난과 더불어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88만원 세대’ 등. 경기불황의 여파로 취업난이 극심해짐에 따라 20대의 실질적인 사회 데뷔가 늦어지는 현상은 20대들의 마음을 불안하고 아프게 만든다. 게다가 31세까지 취업 못하면 취업 길 막힌다는 ‘삼일절’에 ‘청년 백수 전성시대’의 줄인 말인 ‘청백전’, 고용빙하기 등 취업난을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대학가에서 계속 떠오르니, 우리들은 등 붙일 곳 없이 불안하게 흔들릴 분이다.
이렇게 20대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앓고 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무언가가 20대의 마음에 들어차 우리들을 아프게 한다. 기존의 여러 시선들은 이 아픔을 ‘청춘’이라고 지칭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그것을 극복해내야 푸른빛을 잃지 않고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 근래 들어 그 말이 맞는지 의문이다.
필자의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오래전부터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서로의 꿈에 대해 자잘하게 늘어놓으며 어떻게 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러나 근래에 그 친구는 대학을 휴학하고 공무원 학원을 끊었다. 그 친구의 이유는 간단했다. ‘먹고살기 어려워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해’였다. 그런데 이 말이 지금의 20대들의 마음이나 다름없다. 마음은 하고자 하는 쪽으로 손가락을 세워 가리키는데, 정작 몸과 머리는 먹고살기 위해 정해진 길 위를 뛰어 다니고 있다. ‘무엇은 원하니’란 물음에 ‘그냥저냥 취업이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오간다. 이것이 정말로 20대 청년의 삶이란 말인가.
친구가 본격적인 공시생이 되기 하루 전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괜히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왜 아픈지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것 때문에 아픈지, 아니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아픈지 모르겠다. 그냥 아프다’. 우리 20대는 지금 마음에 가득 찬 무언가를 앓고 있다. 그러나 그 가득 찬 것이 청춘의 아픔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청춘의 아픔 또한 우리의 마음속 한자리에 채워져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아픔의 근원지라 생각 하지 않는다.
필자는 사회가 청년들에게 아픔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대의 청년이 열정으로 버텨내기에 사회는 너무나도 버겁게 우리들을 압박해온다. 그리고 이 모든 아픔이 청춘 때문이라 말한다. 사회가 말한 청춘에 청년들은 적은 돈을 받고도 열정으로 버티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먹고사는 비극’에 허덕인다. 그리고 이대로 평생을 산다.
우리는 이 아픔의 근원을 알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병의 원인을 알고 그 병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하듯이, 20대들은 자신들을 아프게 하는 사회의 문제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아픔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배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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