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상견례> : 지역감정에 기대어 성긴 ‘로미오와 쥴리엣’ 만들기
1980년대 말 전라도 남자가 군대에서 펜팔로 맺어진 경상도 여자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여인의 집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가 꼭꼭 숨겨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출생의 비밀. 그것도 출생지의 광역적 구분에 따른 명칭인 ‘전라도’ 글자 석자를 말이다. 발음교정 전문가의 사사를 받아 ‘강남 정체성’으로 급히 무장한 채 고속버스 안에서 그는 민폐를 끼쳐가며 표준문장의 발음을 열심히 연습한다. 전라도라면 이를 가는 병을 가진 예비장인의 허락을 득하기 위한 노력인데, ‘경상도’의 ‘경’자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예비시아비도 마찬가지여서, 이 불쌍한 남녀의 처지는 과히 『로미오와 쥴리엣』에 버금간다 할 것이리라.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공식 속엔 ‘로미오와 쥴리엣’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의 관계지향적 문화권에서는 가족환경 특성이 그 사랑의 일등 방해꾼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다보니 소속 가정의 사회경제적 격차 등 온화한 수준의 장애물들이, 이제는 나중에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에 따라 (유사)근친상간의 위험을 수반하는 난공불락의 벽으로 바뀌게 된지 이미 오래이다.
일단 영화는 시대적 맥락이라는 설득력을 획득하고 출발한 주제를 발전시킴에 있어, 유머의 제조에 강력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어눌한 말투와 결코 위압적이지 않은 외모를 소유한 우리의 신인스타 ‘송새벽’은 어리숙한 전라도 총각의 진정성을 전하는 과정에서, 개성과 자연스러움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은근한 웃음을 자아내는 공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그가 ‘사면경상가’의 상황에서 “서울은 고향입니다”를 당황하면서 내 뱉거나, 막차를 노친 후 ‘행복한 동침’을 맞게 되는 여관방에서 손만 잡고 자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손 말고 다른 데가 잡을 것이 있간디요~”하고 중얼댈 때에는, 깐깐한 관객이라도 무저항의 웃음으로 대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히 ‘대스타 송새벽’으로의 기나길 여정의 빛나는 여명을 내비치기에 손색이 없다. 외골수 경상도아비와 그의 ‘위장강남족’ 아내의 배역을 맡은 ‘백윤식’과 ‘김수미’는, 코미디 이야기구조 속에 성기게 구겨 넣어져 튀는 언행내용을 예의 그 노련한 발성과 어조 및 표정으로 능숙하게 요리해내며, 영화가 시도하는 공식적인 유머 창출의 대부분을 감당해낸다.
그러나 『위험한 상견례』의 ‘위험한’ 부분은 스스로 지역감정이라는 괴물과 전면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자폐적 인물군상을 묘사하고 비틀면서도 이 선남선녀의 연애사에 애로를 제공하고 해결해주는 여유를 충분히 부릴 수 있었다. 대신 영화는 영호남간 적대의식이라는 소재를, 다소 과장된 방식으로 그저 자신이 경작하는 웃음밭의 거름으로만 활용할 뿐이다. 급기야 클라이막스에 오면 두 집안 가장간 갈등의 정체는, 두 사람간 소시적 관계에서의 라이벌쉽이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영화는 이런 우연 이외에도 다른 더 희한한 우연의 요소들을 겹겹이 활용하여, 기어이 남녀간 해피엔딩을 이루는 작위를 감행한다. 그에 따라 영화는 지역감정을 매개로 한 우리사회의 풍자와 해학을 발하는 경지에서 한참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내적 개연성을 구축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만다. 그리하여 나는 영화 속 ‘송새벽’의 대사를 활용하여 결국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다. “현실을 속이는 건 예술에 대한 반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