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조지프 퓰리처 ▲노란 아이
퓰리처상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상은 신문왕으로 불려온 헝가리계 미국인인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50만 달러의 기금으로 1917년 제정되었다. 언론에 14개 부문, 문학에 5개 부문에 걸쳐 상이 수여되고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 '기자들의 노벨상' 이라 불린다. 언론인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영광과도 같은 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사진전이 열리는 등 아직까지 그 상의 영예와 위엄은 그대로이다.
이렇듯 많은이에게 언론과 대중의 명예인 퓰리처상을 제정하여 알려진 그는 간혹, 언론과 대중의 수치로 기억되기도 한다. 바로,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기사를 작성했던 ‘옐로 저널리즘’을 탄생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퓰리처는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믿는 한편,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만평과 사진을 화려하게 쓰고, 체육부를 신설해 스포츠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었으며, 흥미와 오락위주의 일요판도 처음 시작했다. 그렇게 뉴욕에서 승승장구 하던 중 퓰리처의 신문인 <뉴욕 월드>를 그대로 복제한 듯한 <뉴욕 저널>이 생기게 되었다. 심지어 <뉴욕 월드>에서 뉴욕을 풍자하는 내용의 만화를 연재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노란 아이’의 만화가까지도 <뉴욕 저널>로 이직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뉴욕 월드>에서도 당장 다른 작가를 고용해 ‘노란 아이’를 등장시켜 두 신문엔 동시에 ‘노란 아이’가 등장하게 된다. 이 ‘노란 아이’전쟁을 시작으로 치열하고 비열한 경쟁, 옐로 저널리즘이 탄생하게 되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 과장, 기사 빼돌리기, 함정 설치 등 비도덕적인 일을 일삼던 두 신문사의 견제는 꽤 오래가는 듯 했다. 그러나 신문의 방향을 바꾼 퓰리처가 한 발 물러선 덕분에 그 시대의 옐로 저널리즘 사태는 마무리 되었다.
그럼 과연 옐로 저널리즘은 단지 옛날의 사건에만 제한된 단어일까? 결코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다. 한 언론사에서 수백건의 기사를 생산하는 시대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함께하는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뉴스를 볼 수 있다.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우리는 자극적인 기사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내려가고 있다. 줏대를 잃은 손가락을 유혹하는 기사 제목들 속에 있는 ‘충격’이라는 명사를 충격고로케(‘제목 미끼성 기사’를 가장 많이 올린 언론사 순위를 산정해주는 서비스)에선 이렇게 설명한다.
‘부디 꼭 클릭해달라고 독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거나 독자를 낚아보기 위해 언론사가 기사제목에 덧붙이는 일종의 주문‘
이 단어 외에도 ‘경악’, ‘발칵’, ‘알고보니’ 등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어 기사를 클릭하게 만드는 미끼성 단어들이 이용자들의 트래픽 수를 늘리고 있다. 두 신문사의 경쟁에 불과했던 최초의 옐로 저널리즘과 달리 오늘날의 황색 언론은 다수 언론인의 피 튀기는 전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홍수가 몰아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젖어가는 종이신문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종이신문은 기사의 위치부터 크기, 지면 등을 고려하여 정보의 중요도 순으로 기사를 재배치한 효율적인 매체이다. 종이신문은 제목, 부제 그리고 내용 순으로 되어있어서 가독성이 좋고, 신문 하나를 보면 거의 모든 중요한 소식을 한 번에 훑어볼 수 있다.
한 시간만 지나도 실검순위가 금세 뒤바뀌고 어제 일은 오늘 일에, 오늘 일은 내일 일에 묻혀버리는 요즘이다. SNS의 ‘좋아요’와 ‘리트윗’기능은 이슈를 순식간에 퍼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만큼 다른 정보를 쉽게 잊게 만들기도 한다.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 버리는 가십거리보다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위대한 사실 한 가지가 더 중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곽승연 기자
kwaksy@kunsan.ac.kr
*사진출처
1. 퓰리처 http://ko.wikipedia.org
2. 노란아이 http://ko.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