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어머니로 살아가기

 

   
 
영화는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편히 앉아서 한두 시간 새에 길고 심오한 이야기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내 전공이 여성과 가족의 복지이기에 영화를 강의 텍스트로 자주 사용한다. “헤어드레서(도리스 되리 감독, 2010)”는 가장 최근에 본 영화다. 주인공 싱글 맘 카티는 친구와 바람이 난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는 뚱뚱한 아줌마이다. 미용사로 취업하기를 원하지만 외모 때문에 거절을 당한다. 헤어살롱 원장은 “이곳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곳인데,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한다. 나름 가장 아름답게 꾸미고 간 카티는 크게 실망하여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 지친 커다란 몸을 소파에 파묻는다. 하지만 다시 힘을 내어 미용실 창업을 하기로 작정하고 임대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실직자 창업지원, 은행대출의 문을 두드린다. 가는 곳마다 경기가 안 좋아 창업이 어렵다느니, 외모만 봐도 귀찮다는 반응이다. 카티는 좌절하지 않고 은행에서 만난 전직 미용사 실케를 만나 함께 경로당에서 실비미용서비스를 하면서 푼돈을 모아 보증금을 마련하는 꿈에 부푼다. 한 할머니가 파마도중 사망하면서 불법영업으로 벌금을 물고 다시 좌절한다. 보증금이 급한 카티는 급기야 딸이 숨겨둔 용돈에 손대고 베트남 난민 불법이민에 가담한다. 결국 베트남 남자의 도움을 받아 헤어살롱 문을 열지만 시설미비로 개시도 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카티는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딸과 화해하고 베트남인 거리에서 미용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헤어드레서”는 뚱보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자포자기 하려는 자신과 싸우는 싱글맘의 홀로서기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여성영화는 여성이 인격을 지닌 개인으로서 남성과 다르게 삶을 경험한다는 점 을 포착한다. 감독과 제작진의 관점에 따라 남성과 다른 여성의 경험은 상이하게 형상화된다. 여성이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형상화하는지에 따라 영화는 친여성(pro feminist) 또는 반여성의 양극단을 가진 스펙트럼 상의 한 위치를 점한다.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중의 하나인 임신, 출산과 수유능력은 여성의 인간되기보다는 여성되기 더 나아가 어머니되기를 구조화한다. 일과 가정은 여성이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씨실과 날실로 작용한다. 일의 영역이 여성이 인간되기를 추구하는 장이라면 가정 영역은 어머니되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인간되기와 어머니되기를 통합하고자 할 때 여성은 일과 가정의 줄타기를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여성이 이 줄타기에서 가정을 택할 때 여성은 결핍되고 취약하며, 남성의 보호가 필요한 의존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한국 현대사회에서 일부 어머니는 치맛바람을 넘어서서 헬리콥터 맘, 자녀의 매니저로 활약하기도 한다. 헤어드레서는 자신의 의지에 무관하게 남편과 가정이라는 안전지대를 박탈당한,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뚱보 아줌마의 아름다운 홀로서기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친정엄마(유성엽, 2010)”에서처럼 남편으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으면서 어린 딸에게 매맞는 모습을 들키고 사춘기 딸에게 이혼하든지 도망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 하나 참으면 될 것을!”이라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어머니가 있다. 우리 학생들은 친정엄마보다는 헤어드레서가 더 편하고 감정이입이 될 것이라는 당찬 기대를 하며 일 가정, 개인과 가족의 지혜로운 줄타기를 응원한다. 이 응원은 신세계를 살아갈 남학생에게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