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것이 그 사회 전반을 지배할 때, 영웅은 스스로의 탄생을 알린다. 난세에 맞춰 멋지게 등장한 영웅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퇴장한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재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큰일을 해내는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이처럼 영웅이라는 것은 다른 평범한 인물들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우월한 양상을 보이며, 그들이 곤란한 상황에 닥쳤을 때 홀연히 나타나 힘써 도와준다. 때문에 우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팍팍한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영웅을 기다리곤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영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찍이 자기 안에서 영웅을 찾아내어 스스로 이름을 드높였던 ‘모수’의 이야기에서 영웅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서 유래한 ‘모수자천(毛遂自薦)’은 어려운 일을 당하여 스스로 그 일을 맡고 나선다는 뜻으로,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고대 전국시대의 조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당시 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 합종을 맺음으로써 이를 격퇴하려 하였다. 평원군은 출발에 앞서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중 용기와 문무를 겸비한 인물 20명을 뽑아 함께 초나라로 떠나고자 하였다. 그때 식객 중 모수라는 사람이 스스로 청하고 나섰다. 그것을 보고 평원군은 말했다. “뛰어난 인물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송곳의 끝이 주머니 밖으로 빠져 나오듯이 그 뛰어남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그대는 내 문하에 있은 지 3년이나 되었으나, 나는 당신에 관한 말을 들은 적이 없소.” 그러자 모수는 “나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기만 한다면 끝만이 아니라 그 자루까지로 보여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뻔뻔하지만 당당한 자기소개 덕분에 평원군과 함께 초나라에 가게 된 모수는 청산유수 같은 언변을 발휘해 초나라 왕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모수 덕분에 초나라와의 동맹이 무사히 성사되자, 평원군은 모수를 상객으로 대접하고,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천거한 모수덕분에 멸망의 위기에 빠진 조나라가 다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 ‘모수자천’을 교훈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힘써 일한다면, 나라를 위한 큰일에 이바지하는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고난에 직면할 때 어딘가에서 멋지게 나타나 위기에 빠진 인생을 구원해주는 영웅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내 안에 있는 작은 기적에 주목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작지만 큰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소중한 것을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며, 건강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 나를 회복하고, 사랑하는 임을 지키고, 나아가 남을 치유할 수 있는 영웅의 힘을 우리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악당과 멋지게 싸우느라 바쁜 히어로들 말고, 나에게서 시작되며 나만이 살릴 수 있는 영웅을 깨워야 할 때가 왔다.

김태경 기자

thankstk1202@kun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