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도 옥구농민항쟁 100주년 맞이 사진 전시회 개최
옥구농민항쟁의 중요성 및 보존을 위한 자각 필요를 위해 역사학과가 주최해
지난 11월 22일부터 30일까지 우리 대학 박물관갤러리 잇_다에서 옥구농민항쟁 백 주년 맞이 사진전 ‘해동 용전에 황룡이 나라샤’ 전시회를 진행했다. 옥구농민항쟁이란 1927년 전라북도 옥구의 일본인 농장 이엽사의 과도한 소작료에 대항한 농민항쟁이다. 지금부터 우리 대학 역사학과 학우들이 옥구농민항쟁 백 주년 맞이 사진 전시회에 준비한 작품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전시회 작품 중 하나인 ‘용이 머무는 곳 용전’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 작품은 △용전마을과 △용두산 △용성마을 △용회마을 지도와 함께, 용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던 △숫바위와 △암바위를 소개하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농업의 신으로 여겨지는 ‘용’과 관련된 전설에 따라 마을이 형성된 모습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 전설은 용이 승천하다가 밭에 떨어지게 되면서 용의 몸이 마을의 형상을 이룬 것에 기반을 두는데, 이에 따라 밭에 떨어진 용의 머리는 용두산과 용성마을, 허리는 용회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용전마을에는 몸에서 가장 중요한 용의 배꼽(용제)이 위치함에 따라, 용전마을은 용이 머무는 곳이라는 전설이 생겨났다.이렇게 전설을 기반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사실들을 1872년에 제작된 임피현 지도와 용전마을 지형도, 용을 마을에 머물게 도와줬던 숫바위, 용두산 위성사진 등을 통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져 전시되었다. 용전마을에 대한 소개가 함께 이루어진 이유는, 훗날 용전마을이 옥구 민항쟁의 중심지역이 되기 때문이다.
용전을 소개하는 작품 이외에는, 대부분의 작품이 옥구농민항쟁을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가와사키의 조선땅 탐욕’이라는 작품에서는 가와사키의 협박으로 땅을 뺏긴 토지의 지도와, 이를 되찾기 위한 이용휴 선생의 고발 내용이 담긴 공문서가 담겨있어 이용휴 선생의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황실제사 헌곡답’ 작품에서는 가와사키 농장의 헌곡답 사진과 함께, 당대 용전의 쌀을 수탈했던 일본 황실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이 작품을 통해 헌곡답이 일본 황실의 제사인 신상제와 대상제에 용전의 쌀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짐을 알 수 있으며, 일본의 신과 함께 식사하는 제사 행위가 천황에 대한 지배력 과시를 보여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과도한 소작료를 납부하게 한 옥구농민항쟁 농장 △옥구농민항쟁의 기틀이 된 이용호 옥구농민항쟁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를 조직한 장태성의 내용이 담긴 작품 △초대작가인 한국화 작가 김의진 작가의 수묵담채화로 이용휴가를 복원한 작품 △500인의 사람들 △옥구농민항쟁 유공자의 34인 소개 등의 ▲사진과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신화희(역사학과·21)학우는 “이번 사진 전시회는 1927년 11월에 발생한 옥구농민항쟁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개최하게 되었다, 현재 옥구농민항일항쟁 기념비 외에 옥구농민항쟁을 증언할 수 있는 유적지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군산역사문화연구소와 우리 대학 역사학과가 이용휴 가옥과 장태성의 농민야학 안채 등 옥구 농민항쟁과 관련된 주요 유적지들을 발견했지만,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아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며 현재 옥구 농민항쟁과 관련된 유적지의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전시회를 통해 백 주년 맞이 중요성을 깨닫고 관련된 유적지들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시회를 주최하였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이용휴 가옥을 지키려는 언론매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지만 좋은 영향력을 보여준 전시회였다고 생각된다.”며 전시회를 통한 긍정적인 결과에 만족감을 내비쳤다. 더하여, “끝으로 학부생들을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해주신 구희진 교수님과 언제나 든든하게 뒤에서 도와주신 이미영 조교님, 짧은 기간 내 3번의 전시회를 해야 했지만, 불만 없이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주신 역사학과 3학년 학부생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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