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 날, 4월 16일
잊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
▲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 출처 : 구글 |
304명, 안산 단원고, 침몰, 바다, 노란 리본 그리고 4월 16일. 이 단어들을 아우르는 사건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 부른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가 올해 5주기를 맞았다.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발생하였다. 오전 8시 52분 탑승 중이었던 학생이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최초로 신고했다. 그 후 9시 25분에 해양 경찰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구조작업에는 해경뿐만 아니라 민간어선들도 참여해 승객 27명을 구조하였다. 오전 9시 19분부터 각 언론에서는 세월호의 침몰 소식을 긴급하게 전했지만 ‘전원 구조’라는 오보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사고 당일 구조된 세월호 탑승자는 승무원 23명, 단원고 학생 75명, 단원고 교사 3명, 일반인 71명, 모두 172명으로 수학여행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해 탑승객 476명 가운데 304명의 사망자와 미수습자가 발생했다. 수색작업은 정부가 발표한 2014년 11월 11일까지 총 209일간 계속되었다. 하지만 바다 밑 수색은 거센 조류와 탁한 시야, 낮은 수온으로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작업 일정이 길어지면서 피로의 누적과 그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선박 증축에 따른 복원성 부족 문제, 최대 적재량의 2~3배에 이른 화물 과적 문제, 화물 고정 결박 불량, 물살이 유난히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격한 항로 변경까지 한 상황 문제 등 복합적이다. 유족들은 수색 중단 직후부터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지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사건 발생 1073일 만인 2017년 3월 23일에 세월호 인양을 시작했다.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 이외의 여러 시군에서는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만들어 희생자를 추모했다. 실종자가 발생하자, 국민들은 이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노란 리본 캠페인이 시작했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리본은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의 SNS에 퍼지면서 전 국민적 캠페인으로 확산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는 여러 형태로 기억되고,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검찰에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을 설치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요구하는 피케팅 시위를 열었고 지난달 20일에 개봉한 이정범 감독의 영화 <악질 경찰>과 지난 4월 3일에 개봉한 이종언 감독의 영화 <생일>은 미디어를 통해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5년 동안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던 ‘세월호 천막’이 지난 18일부터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목조 형태의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오는 12일에 들어설 예정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노란 리본 스티커를 자가용 뒤에나 자신의 소중한 소지품에 붙이기도 하고, 여러 디자인의 뱃지나 팔찌를 통해 기억에 새기고 상기시킨다. 이슬기(미디어문화·16)학우는 5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5년이 지났지만 4월 16일만 되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라며, “과거를 잊지 않는 것만큼 미래를 위한 대비도 없다고 생각한다. 몇 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추모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5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터졌던 평범하지 않은 그 사건은 그때 우리의 일상이 너무 평범해서, 그 와중에 그 사건은 너무나 평범하지 않아서 더 안타깝고 충격적이었다. 그렇기에 남은 우리는 앞으로의 ‘4월 16일’을 잊지 말아야 할 의무를 가진다. 우리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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