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되는 것인가 변화 시키는 것인가?
제33회 황룡학술문학상 학술부문 당선
제33회 황룡학술문학상 학술부문 당선
변화되는 것인가 변화 시키는 것인가?
왜 『제3의 물결』인가?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항상 변화해 왔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사회를 진보시키는지 혹은 퇴보하도록 하는지에 대해서는 후에 살펴봐야 알겠지만 역사적으로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문명의 변화와에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빼앗길지 모르는, 또 다른 새로움에 적응해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근본적 두려움과 같은 공포를 느낀다. 『제3의 물결』에도 언급되었지만 사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될 때 우리 사회는 전 지구적으로 큰 혼란기를 맞이했다. 이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이러한 변화의 두려움 속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앨빈 토플러는 이러한 전환기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다가온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측면으로 다룬 책이다. 역사적으로 전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던 큰 흐름들에 대해서 구조적으로 상세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러하면서 우리에게 변화에 대한 두려움 보다 이제는 그러한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양극화의 독점과 다극화 사이
먼저 엘빈 토플러가 말하는 제2의 물결 이전 농업사회에서는 인간의 모든 일이 삶과 분리 되지 않았다. 즉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삶의 터전 안에서 인간의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뿐더러 교육을 비롯한 사회화 과정이 이루어졌다. 즉 공동체는 인간의 삶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산업사회가 되면서 이러한 인간의 삶은 점점 해체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앨빈 토폴러는 제3의 물결에서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른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이것은 기술의 발달로 인한 각 개인의 경제적 독립이 영향이 컸다. 이전 사회에서 공동체는 단순히 사회적 의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즉 언급했듯이 공동체는 교육의 장이자 경제적 생계의 장이가도 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기능 기존 공동체와 분리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산업사회의 공장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은 이러한 농업 공동체에서 경제적 독립을 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농업사회의 공동체는 순식간에 해체되기 시작하였으며, 가족단위 또한 대가족에서 소규모 핵가족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곧 산업사회의 대규모 노동자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사회는 급속도로 성장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하여 이제 산업 사회는 고도의 기술의과 많은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높은 능률과 효율을 추구하게 된다. 이에 따라 공장을 운영하는 메커니즘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는데 단순 노동의 시스템에서 정확한 업무가 분담되어 진행되는 분업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산업 현장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국가 자체도 이런 시스템을 받아들여 고도의 성장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에 따라 정치와 공교육의 시스템 또한 중앙 집권적으로 획일화 되면서 이제는 모든 사회의 영역에 산업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즉 높은 효율과 능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전 사회가 사회구조를 획일화 하고 전문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동시에 극대화와 집중화가 진행되었다.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제2의 물결은 바로 이러한 사회를 가리킨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이에 따른 관료제적 구조 속에서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집중되는 시스템, 이러한 문명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하나의 기계부품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도에서 앨빈 토플러는 제2의 물결 이후 또 새로운 큰 변화가 온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제2의 물결을 정리해 보면 그것은 빠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시스템 속에서 모든 것이 높은 효율을 위한 것으로 진행되는 시기다. 이에 따라 모든 것이 한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하고 하나의 기준 속에서 점점 획일화 된다. 하지만 제3의 물결 시대는 이와 정 반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산업 사회가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수직적 성장만을 추구하였다면 이 후 제3의 물결에서는 수평적 성장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어느 한곳으로 집중하여 극대화하기보다 분산되어 다극화가 진행되었다. 국제적으로는 냉전 이후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국제관계에서 아시아와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점점 공평한 국제 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정보와 통신은 극도로 발달하게 된다. 이중에서 앨빈 토플러는 특히 정보 통신의 발달이 획일화 된 지식체계에 대한 도전을 시도한다고 보았는데, 그는 이전 산업사회에서 국가적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공영 매체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 제3의 물결에서는 각 지역방송과 매체가 중심을 이루기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즉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지식과 정보의 집중화가 매체의 지역화를 통해 다시 분산되고 다핵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앨빈 토플러가 말했듯이 또 한 번 인간의 삶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산업시대에 이루어진 집중화와 극대화는 어떤 무언가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 모든 힘은 일부 엘리트와 자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즉 사회의 구조가 단편적으로 매우 양극화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면에 대해서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능률과 효율, 급진적 수직성장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려면 무엇보다도 사회를 움직이는 역학 관계 속에서 정보와 지식, 기술의 독점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산업사회, 제2의 물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러한 ‘독점 구조’가 매우 정당하리만큼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3의 물결이 오면서 다극화 되자 사회의 독점 구조는 분산되고 산업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운영방식이 요구 되었으며, 국제관계 역시 일방적 수직구조에서 점점 수평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과 산업기술의 도입에 관해서도 일부 지식인층에서 이루어지기보다 사회에 공론화되어 한 번씩 검토되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의 단위 또한 이전 산업사회보다 더 소규모로 진행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곧 제2의 물결에서 이루어지던 독점화가 이제는 무너져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시사하는 변화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수직적으로 진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조적인 면 보다 인간 그 자체의 상태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산업사회보다 더욱 분화되고 해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언급했듯이 산업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획일화된 독점 구조 속에서 인간역시 하나의 기계부품으로 인간성 자체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제3의 물결은 이러한 독점구조를 무너트려 가고 있지만 산업사회에 파괴된 인간성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극화의 구조 속에서 더욱더 해체되어 가고 있었다. 인간의 다극화는 다양성과 개성의 존중을 불러왔지만 한편으로는 더욱더 분리된 인간을 만들었다. 타인에 대해서 무감각하고 오르지 ‘나’가 더욱 중요하게 된다. 타인을 공존과 공생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 사회의 경쟁구도 속에서, 다양한 개성을 중요시 하는 사회 속에서 타인은 단지 타인일 뿐이다. 그래서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의 결론에 ‘이제는 인간이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유대를 강조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간 본연의 감정들, 사랑이나 우정 등과 같은 정신적 가치의 회복을 주장한다.
구조적 통찰과 한계, 그리고 인간
이렇듯 현대 사회에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단순히 문명의 흐름을 구조적으로만 이해하고 파악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였고 어떤 문제를 품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에 있다. 사회 변화의 역학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변화, 그것이 지금 『제3의 물결』이 의미 있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제3의 물결에서 다루어지는 논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논의다. 하지만 결론에 그가 제시한 사회 문제의 해결 방안에 있어서 그의 깊은 통찰은 볼 수 없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서론에서 ‘『제3의 물결』은 변화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에 대해 주목하였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목적과 부합하여 『제3의 물결』은 사회가 핵심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구조적 측면 자체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변화를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을 큰 비중에 두지 않는다. 그러하기 때문에 앨빈 토플러가 제시한 사회문제의 해결책은 옳은 말이지만 구체적이지 않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통해 변화를 일으키려면 구조적인 것과 동시에 인간 자체에 대한 성찰과 통찰이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즉 단순히 구조적인 측면에 서 보는 것도, 혹은 너무 인간에게 집중하는 것도 결국에는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힘들다. 단적인 예로 근대 맑스의 공산 혁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본성을 간과한 급진적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공산당 선언』이라고 하는 자신의 논고에서 프롤레탈리아 계급과 자본가의 투쟁을 속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근본적으로 프롤레탈리아와 자본가 사이의 사회구조의 역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간과한 혁명은 결국 지속되지 못하였고 그가 말하는 혁명은 끝났다. 이러한 맥락에서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제언은 단순히 인간과 사회 사이의 구조적 측면에서 말한 것에 그친다. 그러하기 때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제언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공동체로 회기의 논의’, ‘공생과 상생에 대한 논의’는 21세기 현대사회에 들어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이 동양사회에서 이러한 담론은 매우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이것이 서양사회에서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제언은 매우 친숙하다. 즉 모두가 이러한 사실, 인간이 공동체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고 이것은 우리사회의 진리처럼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했을 때 단순한 구조적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제는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것을 넘어서 그 흐름에 나타나는 전 지구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다극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러한 담론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단지 이러한 논의 속에서 구조의 변화와 사회만 바라본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에 도달 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3의 물결』에서 제시한 토플러의 논의는 사실 지금 시대에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언급했지만 문명의 변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파악한 것은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까지 일어난 문명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다양한 예와 논증을 사용하여 일목요연하게 제시했을 뿐이다. 그리고 단지 그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와 흐름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법을 제시할 뿐이다.
인간, 변화되는 존재인가 변화 시키는 존재인가?
현대 사회는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제시하였던 것처럼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전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일뿐더러 인간 자체의 특성과 사회구조가 맞물리면서 발생한 전 인류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러할수록 우리 사회는 사회 구조적 측면의 이해와 함께 인간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단지 구조적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그러하기 때문에 발생하였다’라고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실제로 사회 내의 인간 자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사실상 사회구조가 변화하더라도 그것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사회가 극대화 되었던 혹은 다극화 되었던 간에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인간에게 있다. 사회는 인간의 패러다임 속에서 형성된다. 이전 역사에서도 그래왔을 뿐더러 앞으로도 그래왔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지금 이러한 사회구조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일 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에 있어 이제 사회 구조의 변화를 외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제시한 여러 다양한 문명의 변화와 그 패러다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변화를 보다 쉽게 제시하였지만 그 이면, 즉 사회의 변화 속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근본적인 주장은 실질적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제3의 물결』은 당시 문명사회에서 보여주는 변화의 흐름과 그 안에서 봉주는 인간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구조적인 측면일 뿐 인간 내적인 측면에서 문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논의는 담겨져 있지 않다. 우리 삶의 변화, 사회의 변화는 사실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 하면 우리 사회의 변화는 ‘우리’ 자체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 사회의 문제를 사회 이면에 있는 어두운 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신의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것에 역행하여 정말로, 진실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보여주는 변화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된다. 그러할 때 우리는 단순히 사회적 변화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 정말로 이러한 변화를 만들고 이끌어나가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우리 인간은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진정한 인간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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