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면서 잠깐 언급했듯, 작년 이맘 때 난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대수술을 두 차례 받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대신 두 다리를 잃었다. 수술로 인해 내 등과 옆구리에는 각각 삼십 센티미터 가량의 흉터가 남았는데, 그 때문인지 이즈음의 나는 내가 죽음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 나는 내 등에 답삭 업혀있는 죽음의 무게를 거의 매 순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진통제마저 듣지 않는 통증으로, 그 나머지는 통증에 준하는 공포로 시시각각 압박해오는 죽음 앞에서 나는 번번이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실을 통해 짐작하는 죽음이 지극히 추상적인 데 반해 죽음을 목전에 두어본 사람, 혹은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강요당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체감하는 죽음은 지극히 구체적이다.
등단작을 포함해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소설가 정용준의 첫 번째 작품집 ‘가나’ 속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교사와 아이들의 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말을 버린 호랑이와 예고 없는 발작으로 상처 입은 간질 환자 판다, 곧 돌아오리라 다짐하고 어린 아내와 이름도 짓지 못한 아이를 떠나 외항선을 탔지만 결국 온갖 해양생물들의 먹이가 되어버린 아랍인과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나이든 남자에게 시집온 아랍 소녀 하비바, 얼굴 없는 아이를 낳은 집장촌의 성노동자 송과 그녀를 사랑하는 횟집 홀아비 농, 그리고 왼쪽 얼굴이 녹아내리고 있는 농의 아들 구름이, 스스로는 밥도 떠먹을 수도 없을 만큼 비대해진 채 하루하루 죽음에 근접해가는 오블로와 누이를 경멸하면서도 깊은 연민을 버리지 못하는 스끼, 폭력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폭력의 주체로 거듭나 새로운 벽을 만들어내는 21 등 소설집 ‘가나’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단적인 삶의 폭압 속에 놓여있다. 작가 정용준은 이처럼 죽음과 등을 맞댄 채 살아가는 가련한 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묘사와 결 고운 죽음의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삶은, 그리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폭력적이다. 게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운명 지워진 비극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게 할 만큼 힘이 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삶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오래전 스스로 말을 버린 호랑이가 발작을 일으킨 판다를 향해 다시금 사랑을 말하고, 이미 죽은 아랍 남자가 그의 어린 아내 하비바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가나)가 되어 고향으로 떠나며, 얼굴 없는 아이를 가슴에 묻고 허깨비가 되어버린 송에게 농의 눈길이 머물고,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구름이에게 송의 눈길이 머무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비애를 짊어진 채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이들의 등에 머무는 따뜻한 눈길, 그들은 스스로 그런 눈길이 되어 마지막 순간에 서로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리고 나를 태워 네가 살 수 있다면 그마저도 감내할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두 다리를 잃은 나는 내 부모와 형제의 땀과 눈물과 한숨을 거름 삼아 두 다리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두 팔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죽음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이 위태로운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감히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삶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지금 여러분의 등엔 무엇이 지워져 있나. 내가 상상하는 여러분은 연하고 연한 무 싹과도 같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 스스로의 몸피를 키워가는 동안, 아마도 여러분은 수 많은 상처들을 겪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여러분 스스로가 서로의 등에 머무는 따뜻한 눈길이 되어준다면 바로 그곳에서부터 희망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