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느끼는 군산의 ‘그때 그 시절’
군산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경암동 철길마을과 탁류길
세상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현대인은 세상의 속도에 맞춰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간다. 이번 문화에서는 바쁘게 달리느라 숨이 찬 당신에게 잠깐의 여유를 선물해 줄 군산의 장소를 소개하려 한다. 군산에는 역사가 담긴 장소가 아주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많은 장소 중 옛날의 모습이 머물러 있는 곳, 천천히 걸으며 특별한 옛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두 곳의 장소를 선정했고, 직접 그 여유를 체험하기 위해 취재에 나섰다. ‘그때 그 시절’의 모습과 정서, 지나온 역사를 몸소 알게 해주는 ‘경암동 철길마을’과 ‘탁류길’. 지금, 추억에 빠진 사람들의 웃음이 가득한 ‘경암동 철길마을’부터 함께 걸어보자.
[ 경암동 철길마을 ]
▲ 경암동 철길마을 입구 벽화 / 촬영 : 박주영 기자 |
오는 28일은 철도의 날이다. 철도의 날은 철도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차지하는 비중을 깨닫고, 철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지정되었다고 한다. ‘철도’는 안전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장점이 있어 교통수단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중 하나이다. 그로 인해 철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주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로 흔적을 남겨왔다. ‘경암동 철길마을’역시 단순한 철길에서 시작하였지만, 철도 근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역까지 만들어냈다. 철길마을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 군산의 대표 명소 ‘경암동 철길마을’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경암동 철길마을 소개 / 촬영 : 박주영 기자 |
이곳의 철길은 진포 사거리에서 연안 사거리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가 2.5km인 이 철길은 1944년 4월,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페이퍼코리아(주)가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5~10량의 컨테이너 상자와 화물 열차가 오전 8시 30분부터 9시 30분,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 사이에 마을을 지나갔다고 한다. 마을 중간 차단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 합쳐 건널목이 열한 개나 되었으며, 사람이 사는 동네를 지나야 해서 철도의 속도는 느렸다. 기차가 지날 땐 역무원 세 명이 기차 앞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의 통행을 막았다. 그 사이 주민들은 밖에 널어놓았던 고추 등 세간을 들여놓고, 강아지도 집으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시속 10km 정도의 느린 열차는 2008년 8월, 통행을 완전히 멈췄다. 비록 기차는 사라졌지만, 소유의 경계가 없는 문과 벽, 빨랫줄, 텃밭 등의 일상적인 모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여러 작품의 배경으로 쓰인 만큼, 철길마을만의 분위기가 뚜렷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 철길마을의 모습 / 촬영 : 박주영 기자 |
만들어진지 80여 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철길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낡은 철길은 더는 철길로서의 구실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의 정체성이라는 큰 역할을 새로이 부여받았다. 철길 바로 옆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길을 따라 빽빽하게 늘어서있는데, 이 많은 ‘상점’이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살던 집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철길과 상점의 거리는 가까웠다. 하지만 철길을 따라 걷다 보니 좁은 마을은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졌고, 자신의 지나온 날과 추억을 공유하며 들리는 웃음소리는 철길마을을 더욱 정겹게 했다. 옛 시절의 정취를 느끼고 싶거나 철길마을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나무로 된 철길은 아주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 추억의 먹거리 상점 / 촬영 : 유진하 기자 |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도 많지만, 특히 철길마을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많다. 철길마을이 표방하는 ‘그때 그 시절’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과거 학생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 많고 이런 포토존 외에도 △옛날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재현한 건물 △불량식품 판매점 △달고나 체험하기 △교복 대여 △군산역 건물 등 그 시절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요소가 군데군데 위치해 있다. 심지어 상점에서까지 찍기만 해도 그 시절이 담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마을을 취재하며 가족, 연인끼리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주 보였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행복이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엔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진관도 많이 있어서 옛 교복을 대여해 입고 사진을 찍으면 예스러움이 가득 담긴 나만의 추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역사를 지닌, 또 특별한 여유를 지닌 우리의 철길마을인 만큼 가족, 친구, 연인 등 ‘대화의 꽃’을 피우고 싶은 사람과 함께 오는 걸 추천한다.
▲ 옛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 촬영 : 박주영 기자 |
[탁류길]
다음으로 군산의 역사와 더불어 문학적 가치를 품고 있는 ‘탁류길’을 소개하려 한다. ‘탁류길’은 채만식의 장편 소설 『탁류』 속에 등장하는데, 이는 군산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이다. 문학과 군산의 특별한 만남은 일제강점기 군산의 상황을 잘 나타내주었다. 『탁류』 속에 나오는 군산의 장소를 이어 소설의 이름인 탁류를 따 ‘탁류길’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고, 이 길은 군산의 역사를 생생히 담고 있다. 지금부터 군산의 문학과 장소의 특별한 만남인 ‘탁류길’을 함께 걸어보자.
▲ 탁류길 코스 / 출처 : 구글 |
『탁류』의 작가, 채만식
▲ 작가 채만식 / 출처 : 구글 |
먼저 ‘탁류길’을 알아보기 전, 소설 『탁류』의 작가 채만식을 알아보자. 소설 『탁류』의 작가 백릉 채만식은 1902년 군산 임피면에서 태어났다. 그 후 1924년, 문단에 등단하게 되고 작가가 된 후 여러 작품을 남겼다. 작가는 앞서 말했던 『탁류』 외에도 희곡 『제향날』, 탐정소설 『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였는데,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지식인으로서 소설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자 하였다. 지식인의 자의식을 날카롭게 투사하였다는 점에서 ‘지식인소설 유형’으로 독자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전래의 구전문학 형식을 되살리는 진술 형식을 채택하였다는 점에서 ‘풍자문학의 대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 째보선창 / 출처 : 구글 |
소설 『탁류』 속 ‘탁류길’
채만식의 대표 작품인 『탁류』는 1937년 10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연재된 장편 소설이다. 작가는 ‘정주사 가족’이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혼탁한 물결, 즉 탁류에 휩쓸려 무너지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풍자했다. 과거, 일본은 군산의 평야에서 거둔 쌀을 반출하기 위해 철길, 신작로, 항만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군산이 근대 항구도시로 급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는 곧 수탈과 착취의 심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실제 탁류길의 코스 중 하나인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또한, 『탁류』는 1930년대 군산의 도시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 ‘미두장거리’는 소설의 무대 배경이자 군산의 심장이었다. 이는 개항 100주년 기념 광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군산 근대 건축관’은 작중인물 고태수가 근무하였던 ‘(구)조선은행 군산 지점’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작품 속 조선은행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알 수 있다.
▲ 군산 근대 건축관 / 출처 : 구글 |
또 다른 장소인 ‘째보 선창’은 주인공 정주사가 서천에서 군산으로 넘어온 곳이다. 주인공이 처음 군산에 발을 디딘 곳이며, 팍팍한 삶에 지쳐 자살을 생각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장소들과 차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계속 ‘구불구불 탁류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채만식 문학비’에 도착할 수 있다. 이외에도 ‘빈해원’, ‘해망굴’ 등, 탁류길에서 만날 수 있는 『탁류』의 발자취는 아주 많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탁류』에서 그려낸 1930년대 군산의 도시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갈등이다. 『탁류』를 읽고 소설 속 인물들이 발자취를 따라 ‘탁류길’을 걷다 보면 소설의 의미는 물론 군산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탁류길 중 ‘채만식 문학관’
‘탁류길’ 코스 중 한 곳인 채만식 문학관은, 채만식 작가의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건립되었다. 채만식 문학관은 정박한 배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로비, 전시실, 자료보관실, 영상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작가의 인물 사진 △작품 속 이미지 △군산시 모습 등이 담겨있다. 작가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소개하거나, 채만식의 목소리를 재연하는 등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자료실에선 △각종 자료·논문 △채만식의 발간 도서 △군산시 향토 작가 도서 등을 볼 수 있다. 문학관 2층으로 올라가면 △채만식의 인물사진 △임종 시 익산 초옥 사진 △채만식 문학비 사진 등을 볼 수 있는 공간과 오페라 탁류·채만식의 일대기·문학 강좌 및 세미나를 볼 수 있는 영상세미나실도 있다. ‘탁류길’을 걷다 『탁류』 작품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장소는 필수적일 것이다. 채만식 문학관은 여름철, 겨울철 똑같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시간에 맞춰 방문해보길 바란다.
▲ 채만식 문학관 / 출처 : 구글 |
두 기자가 직접 취재한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과 ‘탁류길’은 그때 그 시절을 절로 느끼게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에 깔린 철길과 옛날 과자, 장난감. 또 옛날 교복을 입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철길마을. 또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된 군산의 장소와 모습, 역사, 군산 작가 채만식의 흔적이 잘 보존된 코스가 있는 탁류길. 이 두 공간의 모습은 마치 1940년대 영화와 문학을 보는 듯 했다. 일제강점기, 신문용지 재료를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철길마을은 ‘철도’가 얼마나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는지를 보여주었고, ‘탁류길 코스’는 소설 『탁류』의 흔적과 채만식, 군산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는 모두 우리의 아픈 과거이기도 하지만, 현재에는 군산만의 특별한 역사와 여유로운 여행 장소가 되었다. 군산의 옛이야기를 몸소 느끼고, 바쁜 현재 속에서 잠깐 걷고 싶다면 옛 감성 가득하고 아늑한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과 ‘탁류길’을 여행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스며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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