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 중 중요한 해로 기억한다. ‘쇼 코미디’라는 뮤지컬을 처음으로 관람하게 되었고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뮤지컬 쇼 코미디(Musical SHOW COMEDY, Seoul Musical Company Presents)는 방송사를 무대로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을 화려한 안무와 개그, 그리고 노래를 곁들여 만든 작품이었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씨가 출연하여 더욱 관심이 가던 공연이었다.
관객들의 분주한 이동과 대화로 웅성거리던 공연장 내의 모든 불빛이 꺼지고 무대로 남경주씨가 특유의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관객들을 반기며 등장하였다. 공연 관람방법 및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을 때, 통제실에서 "Stand-by" "Stand-by라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이제 극이 시작하나 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남경주씨는 무대 뒤로 사라졌고 댄스그룹 ‘요요’의 무대로 공연장은 한층 열기로 가득했다. 이 뮤지컬에 대한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어떻게 공연이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뚜렷이 기억하는 건 그 순간 나는 나를 흥분시키는 일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무대디자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곧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무대디자인과 관련된 책을 사려고 했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무대디자인 관련 책을 찾기란 힘든 일이었다. 지방에서 생활하던 나는 꼭 책을 구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서울의 대형서점을 찾았지만 그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크게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 로프걸이에 있던 신문에서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한국무대미술가협회에서 실시하는 제10회 무대디자인 워크숍 및 전시회에 관한 내용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이 작은 신문기사를 통해 무대디자인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진로에 대한 방향과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얼마 후 광주MBC 디자인실로 직접 찾아가 당시 무대디자인 담당 노영현실장님을 찾아뵙고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하였다. 마침내 내가 그토록 원하던 방송국에서 일을 배울 수 있도록 허락 받았다. 이후 1년간의 생활은 지금 생각해봐도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와 방송국 생활을 함께 하기에 힘들었지만 교수님들의 격려와 배려로 가능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지도교수님이 “무대디자인과 디스플레이는 모두 공간, 조형디자인이니 신세계백화점에서 주최하는 디스플레이 공모전에 참여해봐”라고 권하셨고 그 결과 제1회 광주신세계 대학생 디스플레이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는 현대백화점 디스플레이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게 된 중요한 경력이 되었다.
우리는 많은 꿈들을 꾼다. 그러나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적다. 무대디자이너를 꿈꾸고 서점을 찾아다니고 협회의 워크숍, 전시회에 참여하고 무작정 방송국에 찾아가 꿈과 열정을 무기로 떼를 쓰고……. 꿈속에서만 살지 말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원망만 하며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 말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계획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나에게 왔던 그 기회가 여러분들에게도 다가올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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