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김정은 체제의 미래와 남북관계

- 10분 걸림 -

한반도 북쪽의 상속인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서 북한은 체제 안정의 시험대에 들어섰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은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이다. 결론부터 먼저 도출한다면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단기적 안정성 가운데 장기적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단기적 안정성은 몇 가지 근거에서 비롯된다. 첫째 2009년 이후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해 온 후계구축과정의 덕분이다. 지금 사후적으로 복귀해보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 위원장은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본격적인 후계준비 작업에 나섰고 체계적이고 치밀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2008년부터 김정은을 데리고 현지지도를 다닌 것으로 파악되었고 2009년 1월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이후 2010년 9.28 당대표자회에서 공식화하기까지 군인사 교체, 헌법 개정, 국방위 확대 강화, 내각 개편, 당중앙군사위 확대구성, 당체제 개편 등 당정군에 이르는 정치체제 전반을 후계체제 구축작업에 맞춰 정비해갔다. 당대표자회 이후에 김정일 위원장은 김정은을 대동하고 현지지도를 다니면서 후계자 수업을 진행했고 대장복 장군복 등의 각종 구호와 ‘발걸음’ 노래 보급 등으로 정서적 정당화 작업도 병행했다. 장례식이 끝난 직후 당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정은이 신속하게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것도 이미 김정일 위원장의 10.8일 지시를 통해 준비해놓은 게 확인되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3년 여에 걸쳐 면밀한 후계과정을 서둘러 준비해 놓은 셈이다.

단기적 안정성의 두 번째 근거는 김위원장 사망 이후 위기관리와 권력이동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엘리트의 별다른 저항 없이 초기 대응과정이 무난했고 장례절차 역시 매뉴얼에 따라 차분히 진행되었음은 초동 대응과 위기 관리가 안정적임을 의미한다. 공식매체를 통해 ‘경애하는 영도자’ ‘위대한 김정은 동지’ ‘21세기의 태양’ 등을 호칭하는 등 수령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서의 자리매김도 전사회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더욱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중국의 신속하고 전폭적인 지지와 미국의 김정은 체제의 현실 인정도 위기국면에서 안정적으로 김정은에게 권력이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작용했다.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김정일의 유훈을 앞세운 김정은 유일영도체계의 정당성은 이제 북한의 국가적 목표가 되었다.

안정성의 근거는 또한 오랫동안 북한에서 작동되었던 ‘시스템’으로서의 수령제이다. 수령의 절대적인 유일지도체제가 정착되면서 이미 북한에는 당정군의 유기체적 시스템으로 수령제가 작동하고 있다. 수령제에서 수령은 자연인 개인이 아니라 수령 당 대중이 전일화된 수령제 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수령이 사망한다 해도 수령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존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수령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상당한 제도적 구조적 안정성을 갖는다. 김정일 생일을 맞아 대대적인 우상화 작업에 나서고 김정일 훈장을 수여하고 최고사령관 명의의 군장성 승진을 발표한 것은 수령의 직책 없이도 이미 김정은이 수령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정성의 토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정은 체제는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은 수령의 ‘지위’에 걸맞는 확고한 수령의 ‘역할’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수령은 ‘직책’이 아닌 지위로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다. 즉 수령이 응당 확보해야 하는 직책 즉 총비서(당중앙군사위원장 겸직),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령의 지위를 통해 수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총비서직을 승계 받지 않고도 수령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그런 맥락이다. 따라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정은은 수령의 직책을 물려받는 것보다 수령의 지위에 맞는 실질적 역할을 조속히 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지시하고 집행하는 유일 리더쉽을 확보하고 주민들로부터 수령에 대한 정치적 동의를 확보하는 데서 비롯된다.

수령의 실질적 역할 확보 여부는 권력엘리트들의 갈등과 알력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의 수령의 리더쉽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 권력 엘리트 사이에는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매 현안에 대한 단호하고 현명한 정책결정이 미뤄지거나 주저할 경우 권력 엘리트간에 이견이 발생하고 알력이 발생할 수 있다. 수령이 확고부동한 리더쉽을 장악할 때는 엘리트 단합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엘리트는 뜨는 권력과 지는 권력 사이의 다툼이 생겨날 수도 있다. 결국 아직은 수령의 실질적 역할을 확보하지 못한 김정은 조속히 수령의 리더쉽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권력엘리트 내부의 균열과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불안정의 요인이 된다. 이제 후계자 김정은은 실질적인 수령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북한의 급변사태나 체제전환 가능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전환론 일반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의 저항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고 이로 인해 엘리트들이 균열되거나 권력유지에 자신감을 상실하는 정도가 되어야 사실상 체제전환이 본격화될 수 있다. 또한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동구 주변국의 체제전환 도미노 현상 등 국제적 파급 효과가 진행되는 것 역시 체제전환을 촉발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이에 비한다면 북한은 정치적 저항의 조직화와 대안적 정치집단이 존재하지 못하고 권력 엘리트들의 이익공유와 운명공동체 의식은 여전히 강고하다. 더불어 후견인으로서의 중국의 존재와 중국의 파워 증대가 북한의 체제전환을 제어하는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고 특히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갈등적 상황의 존재 역시도 북한으로 하여금 내부적 변화를 주저하게 만드는 외적요인이 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내재적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붕괴와 체제전환은 여전히 시기상조인 셈이다.

김정은 체제가 확고하게 안착하기까지는 이른바 ‘보수적 안정’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수령의 후계자로서 김정은 체제는 기본적으로 기존 정책을 계승할 것이다. 새로운 전환이나 수정을 시도하기 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과 노선,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과 입장 등을 유지하면서 보수적 입장에서 정책의 계승성을 강조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남측이 먼저 새로운 접근을 모색함으로써 지금의 경색국면을 돌파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 중단 상황은 북한의 불안정성을 관리하고 나아가 한반도 전체의 유동성을 관리하는 데 우리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북한을 관리하고 한반도 정세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이 지금 시기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김정은 시대라는 새로운 리더쉽하에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김위원장의 사망과 함께 지난 시기 대결과 갈등의 남북관계 상처를 역사 속으로 넘기는 지혜이다. 이른바 ‘새판짜기’의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야 한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대학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