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를 성현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옥같은 말씀과 정치철학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사회 각 분야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에게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가 다시 한 번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초년기 공자의 경력이었다. 공자는 불우한 가족사로 인해 그 당시 엘리트코스에 편입되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18살에 과부가 된 어머니를 모시며 혼자 살아가기 위해 공자는 다양한 일들을 해야만 했다. 공자의 다양한 경력 중 필자의 주목을 끌었던 분야는 장의사 일, 창고관리(장부기록) 업무인데, 이러한 특이한 경력과 공자의 학문적 성과는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공자는 장의사 일을 하면서 제례의식과 사람의 근본도리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후 제례의식을 배우기 위해 주(周)나라의 노자(老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 공부한 후, 다시 돌아와 최초의 사립학교인 ‘사학’을 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창고관리자로서의 공자의 경력은 필자에게 큰 관심을 갖게 했다. 그 당시 창고관리와 이에 수반되는 장부기록직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기업의 회계사나 재무관리자로서 전문직에 속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해보면 고상하지 못한 하찮은 직업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근면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녔던 공자는 창고관리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 윗사람들로부터 많은 신망을 받았다고 한다. 즉 탁월한 회계관리자였던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오가는 곳은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는 장(場)인 동시에 인간의 탐욕이 정점에 있는 장(場)이며,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장(場)이다. 필자의 상상이긴 하지만, 공자는 현장에서 회계실무를 보면서 온갖 인간군상에 대한 경험과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본성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인간본성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후일 교육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의 말과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상상해본다. 더 재미있는 것은 공자는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하면서 자신의 가족과 많은 제자들을 물질적으로 힘들게 하지 않았다. 정치철학을 정립하고 국정 컨설턴트의 역할을 했던 공자는 국가에 조언을 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즉, 무능한 CEO가 아닌 유능한 CEO였던 셈이다. 자신의 가정과 학교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던 능력을 그의 과거 창고관리경험에서 찾아보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하찮은 경험이 쌓여 경력이 되고, 이러한 경력은 소위 ‘스펙’이 된다. 지금 우리는 무한스펙의 시대에 살고 있다. 뜬금없이 공자의 이력서를 들추어 봤다. 공자의 스펙은 먹고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편협한 스펙이 아니다. 공자의 스펙은 폭넓은 지성과 따뜻한 인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은 자신이 미래에 피울 꽃을 위해 사용될 거름이며, 풍요로운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대학생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풍부하게 쌓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 내 현실은 좀 우울하다. 현대적인 시설과 다양하게 설강된 과목, 화려한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 예전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이력서를 위한 형식적인 스펙을 쌓는 곳으로 변모되고 있다. 다양한 지적(知的)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하드웨어는 갖추어졌으나, 이를 활용하는 대학현실의 소프트웨어는 좀 염려스럽다. 필자는 학생과의 상담과정 중에 자신의 전공에서 조차도 보다 쉬운, 투입대비 산출의 효율이 높은 과목에 집중 수강하는 학생들을 다수 발견하게 된다. 쉽게 좋은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기준일 뿐 지적 호기심과 다양한 학문에 대한 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여줄 수 있는 계량스펙에 집중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자신의 전공에서조차 효율성의 논리에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이력서 한 칸의 학점란을 위해 다양한 학문적 경험을 회피하게 된다면, 대학생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지적경험의 스펙을 채울 길은 요원하다. 계량스펙을 위한 학문적 편식이 졸업 후 자신의 성장을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됨은 물론, 조직 속 타인과의 소통부재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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