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사회는 유례없는 갈등과 분열,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 국민에게 절망만 안겨주는 정치권의 분열, 유일 분단국의 남북 대치, 지도층의 무능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세월호 참사, 죽음을 부르는 군대폭력과 왕따문화가 빚은 병영 참사, 잇따른 인면수심의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교황 방한이 주는 메시지는 갈등과 질곡의 한국사회의 지도층을 향해 자기성찰과 고해성사의 장을 마련하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워낙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의 주된 목적은 124위의 복자에 대한 시복미사 집전 등의 천주교 사목방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교황 방한이 주는 메시지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겸손과 온유함으로 청빈과 금욕을 실천하고 계신 분이 교황으로 선출된 뒤, 행한 진중한 발언과 행동, 그리고 진솔한 삶이 우리에게 큰 울림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세 비행기를 타고 비즈니스 석에 앉아 동승한 기자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며, 장시간 비행을 한 후 비행기 문이 열리고 교황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올 때 그는 그저 낮은 데로 임하는 목자의 모습이었다. 공황의 환영행사는 소박했지만, 그 낮고 질박함은 큰 울림을 예고하고 있었다. 방한 첫날, 교황은 청와대 예방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억압적 평화는 권력자의 평화이지 민초의 평화가 아니며,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정의로운 평화라는 말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표상으로 방한 내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닌 교황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교황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니 노란 리본을 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교황은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이지만 낮은 곳에서 몸소 섬기는 자세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방한 내내 교황의 관심과 행동은 오로지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시종여일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해고 노동자, 새터민과 외국인 노동자들, 밀양송전탑 반대주민과 용산참사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했으며, 장애아에게 입맞춤하며 강복했다. 자본과 권력보다 사람을 아끼고,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는 사람 중심 사회로의 복원에 대한 이러한 외침은 권력과 부의 양극화에 시달려온 민초들에게는 크나큰 위안거리가 됐다. 더욱이, 그 자신 방탄차를 사양하고 국산 소형차를 이용했으며, 일반 승객들이 탑승한 KTX를 타고 스스럼없이 이동하였다.
이 땅의 정치는 정직하지 못하고, 경제는 나눔이 없고,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는 청부와 담을 쌓았으며 오만하다. 교황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 등 구조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특히, 우리의 위정자들에게 새로운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 교황은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의 미사’ 집전을 마지막으로 방한 행사를 마무리하고 이한했다. 우리에게 종교와 정파, 체제를 뛰어넘어 생명과 정의, 평화의 가치를 다시 성찰하고 각성하고 고해성사를 하게끔 기회를 주고 표표히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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