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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할까, 내가 살고 있는 삶은 올바를까, 가끔 이런 몽상가적인 고민을 누구나 한다. 이런 고민은 사치스러운 고민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겪어오는 모든 일들은 지극히 행복과 관련이 있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우리가 왜 그토록 추구하고자 하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의 조건은 삶의 질이라고 말했다. 즉,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현대의 조건에도 맞을까, 우리는 여태껏 잘 살고 잘 먹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일명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의 삶은 행복한 삶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 조건에 맞지 않았다. 물론 미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은 –대부분의 상류층- 행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삶이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아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의 조건에는 물질적 풍요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일까, 여기서 적어도 우리 모두가 만족할만한 대답으로는 행복이란 나를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 삶이 의미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만으로는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자신의 삶이 마약에 찌들고, 폭력에 물들여져 있는 삶이라 하여도, 그 스스로가 자신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비록 타인이 아니라고 할지 말이다.

의미가 있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의미한 행동에서 행복이 없다는 것을 도출하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즉, 무의미한 행동을 했을 때에 느껴지는 자괴감과 불안감, 그리고 허무감은 행복의 조건과 거리가 멀다.

이렇듯 우리는 행복을 의미 있는 것에서 찾고자 한다.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에 가치를 두기 시작하고, 그 가치의 무게가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치자, 이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무게를 갖고 있다. 무게를 갖고 있는 것은 무겁다. 그 무거움은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게의 중압감은 의미를 지닌다. 가벼움만이 있다면 너무나 허무하고 그것은 행복의 행자도 찾기 힘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하고, 떠나지 않게하고 끊임없이 붙잡고 싶어한다. 거기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의미가 있는 것을 잡고 싶어하고 놓치고 싶지 아니한다. 비록 그게 부정적일지라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행복은 의미 있는 작업의 추구이다. 의미 있는 것은 우리 삶에 지표를 만들어주고 이러한 지표가 행복을 이끈다. 즉, 행복은 찾는게 아니라 사실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미가 있는 것은 만듦으로 생기고 그 만듦에서 우리는 새 삶에 대한 환희와 기쁨을 느낀다. 영화 레옹에서는 마틸다는 레옹이 준 화분 하나를 행복으로 여긴다. 놀랍지 않는가, 화분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다 말이다. 그러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처럼 독자들이여, 풀 한포기라도 그대들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풀한포기가 아니라 행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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