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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배우더라도 똑 부러지게 배워라

컴퓨터정보공학과 교수 신성윤(컴퓨터공학·86)동문

배소연 기자
- 5분 걸림 -

불확실한 미래에 꿈도 없고 무엇을 해야될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주변의 학우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어물쩡 넘어가버린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구체적이지 않다. 이러한 학우들을 일깨워보고자 우리 대학을 나와 현재 우리 대학 컴퓨터정보공학과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신성윤(컴퓨터공학·86)동문을 만나보았다.

불확실함에서 확실함을 이끌어내기까지

대학생일 당시, 1~2학년 동안은 목표가 없었다는 신 동문. 학창시절에 대한 질문에 “집안도 가난하고 점수에 맞춰 오다보니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취업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학창생활을 보냈다. 그 당시 뚜렷한 목표도 없다보니 시간만 때우다 2학년 때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대를 나와서도 복학했다 다시 1년을 휴학하고, 그 동안 돈을 벌다 다시 복학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그가 변하게 된 데에는 자신의 담당교수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저 취업이 목표였던 나를 끝까지 잘 이끌어주고 조교에 대학원까지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그 덕에 박사 학위까지 딸 수 있었고, 그때 비로소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며 조용히 웃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위기와 극복

그렇게 정확한 목표가 잡히고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교수직을 맡게 된 신 동문의 앞길은 순탄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연구에만 몰두하다보니 자연스레 운동하는 시간이 줄었고, 그만큼 스트레스 받는 시간이 많았던 2008년, 신 동문의 인생에 커다란 사건이 찾아왔다. 바로 뇌경색이 온 것이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갑작스레 병마가 찾아올 줄 꿈에도 몰랐다. 쓰러진 뒤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처음엔 절뚝거리며 잘 걷지도 못했고, 그러다보니 건강을 잃은 것에 대해 후회도 많이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물리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평범하게 걸을 수 있을 만큼 호전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위기를 오히려 천운으로 생각한다는 신 동문. “이 일이 있었기에 자신을 더 채찍질 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덧붙여 지금은 여러 학회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고, 운동과 논문 쓰는 것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교수의 눈으로 보는 학생들

자신이 졸업한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느낌이 어떨까? 신 동문은 이 질문에 “매우 기분이 좋다. 모교이기에 더 애틋한 느낌도 있고 더불어 학생들과 거리감이 없어 그 점이 편안하다. 또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생들에게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예전보다 학생들 간의 끈끈한 느낌이 줄어든 것 같다.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학생들이 개인주의로 넘어가는 느낌이라 약간 아쉽다”며 학생들끼리 좀 더 돈독한 우정을 쌓았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쳐 보였다.

제자이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본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신 동문은 “요즘 학생들이 어느 하나를 잡고 꾸준히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대학을 나온다는 생각보다는 무엇 하나 꾸준히 파는 것이 좋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하나라도 똑 부러지게 배운다면 그만큼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라 답했다.

마지막으로 신 동문은 “무엇 하나를 해도 끈기 있게 해야 된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 직장을 잡은 뒤에도 끈기 있게 노력해야 된다며 돈을 조금 벌더라도 열심히 하는 만큼 값진 것을 얻을 것이다”라고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배소연 기자

1100062@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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