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사라진 공주 이야기’를 패러디한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이 만화에서도 처음에는 역시 부마가 되고자 패기 있게 왔으나 결국 공주를 웃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하나씩 처형된다. 그러다 마지막 등장한 젊은이의 말에 참석한 모두는 소위 ‘빵 터진다.’
“저기.... 일본 사람들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래요.”
이렇게 ‘민족’은 당위적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아주 쉽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민족’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 이면에는 아주 복잡하고 정교하게 작동하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와 문화의 공동체인 종족적 개념으로서의 ‘민족(ethnicity)’보다는 근대 국가 형성 시기에 사회 역사적으로 구성된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물론 두 민족 개념 역시 그 경계가 명확히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대 사회에서의 민족 개념과 근대 국가 이후의 민족 개념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문화적 양식을 공유해 온 정치적 공동체를 민족으로 보고 우리 민족의 형성 시기를 근대 이전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때 역시 평등한 시민 사회를 전제로 하는 공동체는 아니라는 점에서 근대 국가 이후의 민족과 다른 것은 마찬가지이다. 간단히 말해서, 삼국을 통일하고자 당나라의 세력을 끌어들여 결국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를 반민족적이라고 욕하는 것은 철저히 지금 현재의 관점일 뿐이다. 그리고 이 관점에는 신라와 백제가 한 민족이라는 순수한 믿음 보다는 ‘당나라’를 타자로 설정하고자 하는 철저히 배타적인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민족 개념은 다양하게 펼쳐져왔다. 민주화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던 1970-80년대 우리 사회에는 전통 수호를 내세운 정부 주도의 민족주의와 정부의 독재 권력에 대항하는 사회 변혁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가 양립하고 있었다. 대립적인 두 세력이 서로 다른 민족주의를 지향할 때, 그 안에 담긴 민족의 개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자가 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가적 통합과 반공주의를 민족으로 주장할 때, 후자는 자유민주주의와 통일을 민족으로 주장했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민족주의에 따라서 민족이 만들어진다는 작가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다시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단순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우리 존재의 근거를 확인하고, 역사적 자부심을 교육하고자 하는 것일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대처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 민족과 민족주의가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사회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미래 사회의 민족은 얼마든지 다시금 규정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차이를 경계로 타민족을 배제하고 차별화 시키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한 정치공동체 안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존의 민족주의적 시선이 피부색에 따라, 경제적 계층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우리와 남을 구분해내는 데에 사용되었다면, 새로운 민족주의는 혈연이라는 허구적이고 신화적인 기원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끌어안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다문화’, ‘다양성’이라는 말은 텅 빈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민족과 민족주의는 공존과 연대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이름으로 붙게 될 때만이 가장 가치 있게 작동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어쨌든, 민족과 민족주의가 더욱 유연해져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