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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문학상 학술부문 가작(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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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학술(영화리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대 흥행작으로써 2001년에 개봉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한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현 시대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원령공주』(원제:모노노케 히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쟁을 반대하였으며, 환경보호를 주장했다. 또한 남성중심의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성인권을 신장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묘사해왔다. 그리고 극중 인물들은 항상 주인공은 선하고, 적은 악한 선악의 대립 구조를 취하지 않고, 각자의 인물들이 모두 선-악을 내제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또한 이러한 그의 작품관을 계승하고 있다. 치히로와 그녀의 가족들이 어느 터널을 통과하게 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 들어가게 되어 생긴 일들을 다룬 이 작품은 주인공으로 여자아이인 치히로를 앞세워 그의 페미니스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극 중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유바바를 통해서 선-악이 내제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를 통해서 일방적인 선, 악이 아닌 선과 악, 양쪽이 모두 내제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극 중 큰 사건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오물신에 대한 사건이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현 시대의 자연파괴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 속에 녹아있는 그의 작품관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살펴본다면 더 심도있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며, 이를 중심으로 작품에 대해 논해보려고 한다.

 영화는 치히로와 가족들이 이사를 가면서 시작된다. 집을 찾아가던 그들은 길을 잘못 들어 옆 산길로 잘못 들어가게 된다. 그 길을 따라가던 중 어떠한 터널을 발견한 가족들은 치히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터널을 따라 들어간다. 터널을 따라 들어선 곳은 버블경제시절에 지어졌다가 망해버린 테마파크로 추측되어졌지만, 사실 그 곳은 800만 신이 쉬어가는 목욕탕으로 물 없는 강가를 경계로 한 환상세계였다. 하지만 이 세계 또한 또 다른 하나의 현실이다. 극중에서는 치히로가 앞으로 헤쳐나아가야 할 현실이며, 관객에게는 환상적이지만 갈등이 있고, 생긴 것은 다르지만 평범한 존재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환상세계에 들어선 치히로에게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부모님도 그 곳에서 음식을 마구 먹다 돼지가 되어버린다. 위기에 처한 치히로에게 그 안에서 만난 하쿠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쿠는 이 세계에서 사는 방법을 치히로에게 일러준다. 신들의 목욕탕에서 살아나가려면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일 하지 않는 사람은 목욕탕의 지배자 ‘유바바’에 의해 돼지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치하루는 유바바에게 찾아가 계약을 맺고 일을 하게 된다. 계약을 맺으면서 유바바는 치히로의 이름을 보며 “과분한 이름이군.”이라고 하며 이름을 센으로 바꾼다. 치히로란 한자로 千尋(천심)이라고 적으며, 일본 여성에게 지어주는 이름 중 하나이다. 이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렇게 각각의 뜻을 지닌 이름은 개인에게 주어진 자아라고 볼 수 있다. 유바바는 千尋(천심)에서 千(천)만을 남겨 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으로서 치히로에게 자아를 빼앗는다. 마치 죄수에게 이름을 빼앗고 숫자로 부르는 것처럼 치히로는 센(숫자로 천)이 된다.
 센은 린에게 맡겨져 일을 배우게 된다. 일을 배우던 센에게 첫 번째 일이 주어진다. 갑작스레 찾아온 특대 오물신을 수발하는 일이다. 지나가면 주변의 모든 것이 썩어버릴 정도의 특대 오물신은 사실 어느 이름있는 강의 주인이다. 그런데 왜 강의 주인은 오물신과 같은 모습으로 목욕탕에 몸을 씻으러 온 것일까? 이는 극중 자전거로 대표되는 온갖 쓰레기들 때문에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쓰레기들을 뱉어낸 강의 주인은 다시 깨끗한 수룡의 모습으로 돌아와 목욕탕을 떠나게 되는데, 미야자키 감독은 이 장면과 관련하여 "일본의 강의 신들은 저 오물신처럼 슬프고 애절하게 살아간다. 이 일본이라는 섬나라에서 고통 받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인간에 의해 오염된 강의 주인은 일반 오물신이 아니라 특대 오물신으로서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현재 환경오염에 대해 감독이 얼마나 큰 경각심을 지니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강의 주인을 깨끗이 하고 축제와 같은 즐거움을 만끽하던 목욕탕에 센이 들였던 가오나시가 밤 중에 등장한다. 그리고 가오나시는 사금석으로 유혹해 개구리 직원을 먹은 뒤 사금석을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 계속해서 자신을 채워줄 무언가를 요구한다. 수많은 음식들, 공연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돈을 보고 그에게 몰려든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센을 찾는다. 왜 하필 그는 센을 찾았던 것일까? 가오나시는 일본어로 顔無し인데 이는 얼굴없음을 의미한다. 가오나시는 말도 할 수 없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항상 혼자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혼자 외롭게 서있는 그에게 말을 걸어주고, 그의 존재를 인식해주었던 것은 센이었다. 때문에 센에게 집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이 없다는 이름처럼 그의 인성은 자신이 먹은 상대에 따라, 대하는 사람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런 그를 통해 현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오나시가 목욕탕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을 때 센에게 용의 모습을 한 하쿠가 발견된다. 그는 무언가에게 ㅤ쫒기고 있었고, 센은 그를 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유바바에게 돌아가게 되고 센은 그를 구하기 위해 다시 유바바의 방으로 올라가게 된다. 유바바는 하쿠는 이제 필요없으니 처리하라고 이야기하고, 목욕탕을 나선다. 유바바의 부하들이 그를 처리하려고 할 때 센은 이를 저지하려고 하고 이때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가 나타나 하쿠를 데려가려한다. 제니바는 방해가 되는 유바바의 아들 ‘부’를 쥐로 바꾸고, 유바바의 부하들을 각각 작은 새와 가짜‘부’로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결국 하쿠를 데려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센은 하쿠를 치료하기위해, 그리고 대신 제니바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쥐가 된 부와 작은새, 그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은 가오나시와 함께 제니바의 집으로 향한다. 센이 제니바에게 향하고 있을 때 깨어난 하쿠는 유바바에게 찾아가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소중한 것이 바뀌어 버렸는데도...”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유바바는 바로 사금석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바바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분명 돈이 아닌 아들 ‘부’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는 후에 돼지가 된 자신의 부모님을 알아보는(사실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치히로와 대조된다. 바뀌어버린 것을 알게 된 유바바는 격노하고, 격노하는 그녀에게 하쿠는 자신이 부를 데려올테니 대신 센과 센의 부모님을 해방시켜주라는 조건을 내건다. 제니바에게 도착한 센은 제니바에게 용서를 구하고 하쿠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센과 가족을 걱정하는 그녀에게 제니바는 머리끈을 선물해주며, ‘모두가 함께 엮은 실로 짠’ 머리끈을 선물해주며 보를 찾으러 온 하쿠와 함께 목욕탕으로 돌려보낸다. 제니바의 생활방식은 같은 마녀이지만 유바바의 그것과 다르다. 직접 문을 열어주며, 직접 요리하고, 직접 실을 짓는다. 모든 것을 직접하는 제니바는 “우리들 둘이서 한사람 몫인데도 마음이 맞지 않아서 말이지.”라고 이야기 한다. 마녀의 마술은 일종의 현대문물이다. 현대 문물과 과거 생활양식은 한족이 버려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악을 대표하는 유바바와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제니바를 통해 선-악은 공존해야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용의 모습을 한 하쿠에게 센은 하쿠의 정체를 알려준다. 코하쿠가와(코하쿠 강)라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하쿠는 자신의 본명을 떠올린다. 그의 본명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이름대로 강의 주인이다. 니기하야미는 일본의 신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이름으로써 코하쿠 강의 주인인 신이라고 볼 수 있다. 멘션이 지어져 사라진 코하쿠 강의 주인. 그 또한 본명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자아를 다시 찾게 된다.
 목욕탕으로 돌아온 센에게 유바바는 돼지를 12마리 가져다 놓고 부모님을 찾으라는 문제를 낸다. 센은 여기엔 없다고 말한다. 하야오 감독은 치히로에 대해 "여주인공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가 그곳에서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악을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 말에 따라 생각해보면 센은 부모님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했기 때문에 맞출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튼 간에 여기엔 없다고 하는 센의 말은 정답이었고, 그녀는 계약이 풀려 다시 치히로가 된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인간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크게 3가지의 모습을 부각시켜 드러내고 있다.
 첫 번째는 자아의 상실이다. 여기서는 왜 하필 배경이 목욕탕인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아직도 대중목욕탕이 상당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대중탕은 많은,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중탕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사람들의 군상을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개성, 즉 자아를 상실했다. 유바바에게 이름을 뺏기고 귀속된 그들은 얼핏 보면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개성이 없다. 또한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나름의 개성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은 모두 사람들의 모습에 일방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임을 보면 이는 더욱 부각된다.
 두 번째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다. 이는 오물신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타 오물신에 비해 거대한 특대 오물신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를 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인간소외 현상이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심각하게 대두된 주제라고 볼 수 있는 ‘히키코모리’로 대표된다. 영화 속에서 가오나시와 부는 이러한 히키코모리를 대표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을 대하는게 서툴러서, 혹은 누군가의 과보호로 인해 그들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로 인해 그들은 히키코모리와 같은 모습들을 보여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인간과의 관계-사랑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치히로와 하쿠를 계속해서 행동하게 만드는 이유는 가마할아범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이다. 또한 제니바의 집에서 받은 부적은 모두가 함께 엮은 실, 즉 인연의 힘이다. 인연의 힘은 부적이라는 영적인 보호매체로써 표현되는데, 부적은 일본인에게는 세상에서 날 지켜주는 물건이다. 히키코모리를 대표하는 가오나시와 부 또한 센과의 관계 속에서 크게 변해가는 인물들이다. 이렇듯 현대문제의 최대 해결책으로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 인연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인연은 환상적인 세계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극적으로 표현되어 우리에게 와닿는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한계일 수도 있고, 문학이라는 매체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또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준비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추상적인 해결책만을 던져주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린다. 때문에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 방안은 영화를 본 관객, 우리가 해결해야할 몫으로 남게 된다.
 영화는 개봉한지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13년이 지나도록 우리네 사는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람들은 자아를 숨기고 세상을 돌리는 톱니바퀴처럼 일하고, 쓰레기는 줄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은 소외되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문제나 노인소외문제는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800만 신들의 목욕탕인 환상세계의 규칙처럼 모든 것은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될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소감문

황룡문학제에 출품할 때 제가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직 미숙함에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제출했습니다만, 이렇게 당선까지 되어 가슴이 너무나 벅찹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두 번 감상하는 걸로는 보면서 느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질 않더군요. 그래서 계속 돌려보면서 소재 하나하나를 종이에 정리해가며 적고, 또 돌려보면서 그 소재에 대한 생각을 적고, 한편의 비평문을 적는 것은 많은 정리의 과정을 거치고서야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꺠달았습니다. 영화를 이렇게 분석적인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더 많이 연습이 필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 그래서 먼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소설 『연금술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는 것이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진정으로 원하고 소망한다면 행동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산티아고가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세상으로 발을 내딛은 것처럼 저도 한걸음 내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을 받게 된 것을 온 우주가 제 소망이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저의 '자아의 신화'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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