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문학상 문학부문 가작(소설)
시(試)의 나라
시(試)의 나라
시(試)의 나라
때가 돼서 깨어난 건 아니다. 잠을 충분히 자서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좁고 좁은 고시원의 벽들이 나를 짓누르며 일어나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내가 내다보고 있는 미래의 시야만큼 좁은 고시원방에서 나는 손을 뻗어 안경을 집어 썼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고시원에서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온몸이 아프다. 답답한 청춘들의 기운이 억누르는지 저렴한 매트리스 위에 자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한 번은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서 저녁내 잠을 못자고 해가 뜨자마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기도 했다. 가족과 사회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나태한 나를 짓누르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놈의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에 과연 일어나고자 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점심이 다 되가는 시간에 일어나 아침에 정한 공부를 하지 못하고 3~4시간의 공부 스케줄이 밀렸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씻지도 않고 모자를 눌러쓰고 노량진의 컵밥 거리로 나간다. 면도를 며칠간 하지 않아 턱이 까끌 거리면서 간지러웠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이성도 나를 보고 있지 않고 당장 있을 9급 공무원 시험에 내 모든 정력을 쏟아야 했다. 아직 3달여나 남았지만 왠지 나는 이미 결론이 난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작년만 해도 패기 넘치게 반드시 붙고 말거라는 의지가 가득 찼다. 1년 넘게 남은 시험기간에 자신만만하였다.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개념강의를 1회독 하고 초여름부터는 문제풀이와 함께 심화 개념을 다질 생각이었다. 그리고 겨울 내내 모의고사에 응시하고 문제풀이 양을 늘려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갖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개념 강의 완강은 하루하루 늦춰져갔고 문제풀이는커녕 연말까지 개념강의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몸도 마음도 움츠려들기 시작하여 사실상 공부를 멈추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매해 반복되어 어느덧 이 짓거리를 5년간 반복하고 있었다.
첫 해는 첫 바퀴니깐 당연히 떨어지는 것이었고 공무원 카페 사람들이나 주위 사람 모두가 입을 모아 9급 공무원은 최소 3년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직 난 2년이나 남았던 것이다. 처음엔 공부하는 재미도 있었고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맛이 나의 자신감에 더욱 불을 지폈다. 이 수준으로 하다보면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나중에는 강사들을 평가하기에 일렀다. A강사는 너무 하위권을 생각안하고 상위권 위주라 쓰레기 개념강의라고 생각했고 B강사는 너무 잡담이 많고 날로 먹는 경향이 있어 사기꾼으로 보기도 했다. 또 C강사는 개념강의가 최고이긴 하나 너무 강의수가 많아 장사꾼처럼 보였다. 9급 공무원 시험공부 1,2년간은 갖가지 강사들을 옮겨 타며 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이 강사는 어떻고 저 강사는 저렇고 하는 나름의 비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무원 공부 카페의 합격한 사람들처럼 현학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였고 내가 시험에 떨어진 타당성을 찾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제 공무원 준비를 시작하는 신입들에게 으스대기 좋았다. 강의 수강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강사들이 늘어놓는 인생경험담이나 조언 그리고 공부법들이 참 좋았다. 뭔가 의지를 북돋아주고 합격에 대한 엄청난 비밀을 안거 같아서 좋았다. 그렇게 중독된 것처럼 타 강사의 공부법 조언 잡담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노는 기분이라기보다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찾아 들었다. 그렇지만 결국 남은 건 그들을 카피하여 신입 수험생들 앞에서 사기꾼처럼 공부란 이런 것 이고 국어 공부는 이렇게 하여야 하고 영어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나도 하지 못하는 방법들을 대단한 것처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간 입담을 단련한 탓에 나는 공부카페 안에서는 대단한 멘토로 알려지기도 했다. 실질 적인 나의 점수들은 합격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으로 공부법 상담을 해준 것이기도 했다.
(중략)
이 형의 공부법 강의는 또 시작되었다. 벌써 몇 번째 갈아타는 것인지 셀 수도 없었다. 늘 진짜 진정한 공부법을 찾았다면서 이렇게 하면 자신은 반드시 붙을 거라며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시험을 본 이후에는 갖가지 변명을 들이대기 시작한다. 분명히 완벽했는데 배우지 않은 것이 나왔다거나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거나 옆자리 여학생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어서 그거 보다가 시간이 다갔다고 한다. 보통 결혼할 나이에 자신보다 어린 녀석들을 데리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해대는걸 보면 한 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내가 저 형의 입장이었다면 그냥 입 다물고 묵묵히 공부만 할 것 같은데 애초에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어찌됐건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우리는 형의 끝날 줄 모르는 공부법 강의를 들으면서 배를 채우고 각자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고시원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못되었다. 오늘 하루가 4시간 정도 밖에 안 남았지만 충분히 다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차하면 새벽까지 하고 내일 일찍 일어나면 될 일이었다. 영어 강의를 하나 틀어놓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녔다. 강의 두 개를 다 보고 나서 문법책을 펴들었다. 오늘 할 분량을 살펴본 뒤 인터넷 공부방송을 틀어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모처럼 한 두 시간 집중하며 공부했다. 역시 나는 밤 체질이다. 밤이 되어야 좀 집중이 잘되고 공부도 잘되었다. 간혹 공부방송 채팅창에 올라오는 공부법 질문이나 책 선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답변을 해주고 계속해서 공부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컴퓨터 캠을 이용하여 자신의 책상을 비추어 공부하는 모습을 인터넷에서 보여주는 공부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독학을 하는 수험생들에게는 매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각자 외롭게 공부하기도 하고 다른 수험생들은 어떻게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심적으로 불안하고 시험에 대한 팁도 얻기 위해 안성맞춤이다. 시험기간 초반에는 우후죽순처럼 많이 늘어났다가 시험이 다가 올수록 조금씩 줄어든다. 매일 10시간 이상씩 꾸준히 방송펑크 없이 하는 사람들이 합격하기도 한다. 그들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기에 학원을 다니지 않고 독학하는 사람들에겐 든든한 지원군이다. 함께 공부를 시작하고 함께 공부를 마치는 것이 보람되기도 한다.
그 공부방송 안에서 나는 어느 정도 신망이 두텁다. 공부법에 대한 지식도 있었고 오랜 수험생활로 인한 시험 노하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 사이에 점수를 묻거나 하는 것은 결례이므로 나의 실력은 들통 나지 않은 채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한 뒤 그들과 몇 달 안남은 시험기간에 서로 응원을 해주고 공부법을 공유하고 수다를 떨며 하루 스트레스를 풀었다. 침대에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누웠다. 내일도 늦게 일어날 거 같았지만 아직 석 달은 시험기간이 남아서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다. 다음 주 부터라도 12시간씩 다시 공부하면 합격은 충분 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석 달이라는 시간은 적은 것이 아닙니다. 곰도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에요. 마지막까지 초심 잃지 말고 달려갑시다.”
무게를 싣는 데로 푹 들어가는 허약한 매트리스에 몸을 뉘인 채 시험 100일 기념 응원 영상을 보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매일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국가직 시험이 코앞이다. 겨울의 추위를 아직 못 벗어난 채 4월을 맞았다.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이 지긋지긋한 시험을 빨리 끝내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같은 고시원에 사는 형은 저번 주 부터 또 다시 재수를 하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다. 올해는 감기가 너무 걸렸다느니 일반 행정직은 봉급이 너무 적으니 뽑는 수는 적어도 검찰사무직이 좋다는 소리를 해대었다. 결혼하면 판검사들이 화환을 세워주기 때문에 기가 살고 검찰사무직을 몇 년 한 뒤 로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로펌에 들어간 뒤 봉급도 만만치 않게 많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매해 직렬을 바꾸는 형이라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한편 인터넷 공부방송 수험생들도 저마다 불안을 토해냈고 서로를 토닥여주며 안정시켰다. 자주 오는 시청자들 중에 나에게 이번에 합격할거 같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공부한 만큼 나오겠죠.” 하거나 공부하느라 못 본 척 하기도 했다.
사실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린다면 작년으로 아니, 100일 전만큼만 돌려도 정말로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해 이런 생각은 늘 든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나의 본 실력이 나올 것이리라 믿기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는다. 근 4년과는 다르게 올해 푼 문제집들은 참 많았다. 절대적 공부양이 합격을 결정한다는 나의 이론을 바탕으로 수많은 문제를 풀면서 실력을 다졌기 때문이다. 사실 진작부터 깨달았으면 몇 년 전에 이미 합격했을지도 모른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적기는 하지만 그렇게 짧은 기간도 아니기에 충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시험일을 향해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시험당일 불안함에 날을 새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9급 공무원 시험은 수능과 다르게 몇 시간 만에 끝나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해서 빠르게 풀어나가면 됐다. 그렇기에 딱히 충분한 수면을 취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종종 날을 새고 시험 봐서 합격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시험시간에 배가 아플 것을 대비해 적당히만 먹고 나왔다.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한 뒤 고시원을 나서기 전 마지막 체크를 한다. 시험 시작 전에 챙겨볼 그 동안 정리한 서브노트를 챙긴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넉넉히 가서 시험장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같은 고시원에 사는 형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나보다. 그는 그럴 인간이었다.
시험장소에 도착한 뒤 나의 손 때 묻은 서브노트들을 본다. 딱히 지금 본다고 점수가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지 않으면 심적으로 안정이 되지가 않는다. 9시 20분 즈음이 되자 감독관들이 들어오고 시험유의사항을 알려준다. 시험 시간이 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린 뒤 그동안 연습했던 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것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한다. 10시부터 시작되어 11시 40분까지 모든 과목을 한 번에 다 해야 하기 때문에 과목별 시간배정이 아주 중요하다. 풀 수 있는 것부터 풀고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것은 패스해버린다. 50분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오는 시험생도 있었다. 그리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중략)
현실의 파도는 매섭게 우리를 내리친다. 혹자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한다. 이 무슨 되도 않는 말인가 파도 맞는 것을 즐기라는 것인가? 변태도 아니고 그걸 즐길 사람은 없다. 나는 그 파도를 피하지 않고 올라 탈 것이다. 이 자들이 만들어낸 사회제도 속에서 내가 올라탈 파도를 찾아 먼 곳을 바라볼 것이다. 모두가 파도에 부서지고 피하고 있을 때 파도를 탈 수 있는 방법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줄 것이다. 나의 펜촉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소감
생각지도 못한 수상 소식에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소설이라는 것을 짧지만 처음 써본 것이었고 1학년의 눈에는 공모전 수상이 큰 벽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구체적인 수상소식을 듣기 위해 허겁지겁 해당 부서로 간 기억이 난다. 사실 이번 겨울방학과 다음 학기까지 장편소설을 써볼 계획이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입영일이 결정되면서 그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때마침 황룡학술문학상이 있었고 조금이라도 그 한을 풀고자 짧지만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써내려갔다. 부족하지만 더욱 더 정진하라는 뜻으로 주신 상이라고 생각하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시(試)의 나라’라는 소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으며 ‘나’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글을 읽는 모두가 본인이라고 생각하게끔 하고 싶어서였다. 특히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의 주인공이 겪는 일들과 심리가 남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 인물 또한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람들로 구성을 하였고 역시나 이름은 없다. 현재 서점이나 온라인에 시험에 관한 합격 수기는 수도 없이 많다. 수기들의 일관된 내용은 힘든 수험생활과 그 끝에 합격이라는 영광으로 마무리 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단순히 합격 아니면 불합격으로 나뉘는 흑백결과를 피하고 좀 더 다른 결말과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고 좀 더 수험‘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2014년 9급 공무원 응시생이 20만이 넘어갔고 노량진의 학원가는 수능입시학원 못지않게 공무원 학원 또한 성행을 이루고 있다. 올해 수능 응시자가 60만인데 그 중 공무원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1/3이라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청춘들이 셋 중에 한명은 공무원이 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외의 청춘들은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은 사자 붙는 전문직종이나 공무원을 자녀들에게 희망하신다. 또한 주변 지인들도 쉽게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한다. 게다가 우리 학교뿐만이 아닌 다른 대학교의 교내에서도 공무원 학원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공무원 시험 합격자의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우리나라의 청춘들을 한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싶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길을 더군다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애초에 묻어버린 채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의견은 현실을 너무 무시하고 이상적인 소리를 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복잡한 사회구조와 제도가 이런 현상을 만들기도 했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개개인에게도 원인이 있다. 이 소설에서는 후자의 문제를 집중조명 하였다. 어찌 되었든 나 자신이 인생의 주연이 아니면 인생이라는 영화는 재미가 없는 것이다. 조연으로 탈락하여 남들에게 주연 자리를 내준 것은 나의 영화가 아니라 남의 영화가 된다. 모두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한 명 한 명 바뀌어 가서 영화의 주연 자리를 되찾는다면 조금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다시 한 번 수상의 큰 영광을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리며 이 시대에 함께 호흡하며 노력하는 청춘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다음에는 더욱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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