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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인 사동 표현과 피동 표현

-친구를 소개시키다(?)/ 머리가 벗겨지다(?)

박송이 기자
- 4분 걸림 -

사동은 문장의 주어가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행위를 하도록 시키는 의미를 표현하는 문법범주이다. 사동문 ‘선생님이 학생에게 책을 {읽게 했다/읽혔다/읽도록 했다}.’를 예로 들면, 문장의 주어인 ‘선생님’이 다른 사람, 곧 ‘학생’에게 ‘책을 읽는’ 행위를 하도록 시킨다는 뜻을 지닌다. 사동 표현은 명사에 ‘시키다’를 결합하여 만들 수도 있다.

(1)가. 안나는 동해를 봉이와 결혼시켰다.
나. 지희는 민호에게 자신의 진심을 이해시켰다.
다. 어머니는 과외 선생에게 아들을 교육시켰다.

(1가)는 주어인 ‘안나’가 다른 사람, 곧 ‘동해’에게 ‘봉이와 결혼하는’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다. (1나, 다) 역시 주어(지희, 어머니)가 다른 사람(민호, 과외 선생)에게 어떤 행위(지희의 진심을 이해하다, 아들을 교육하다)를 하도록 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은 올바른 사동 표현일까?

(2)가. 나는 부모님께 친구를 소개시켰다.
나. 이곳에 차를 주차시키면 안 돼.
다. 이 책을 자세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소화시켜야 한다.
라. 요즘 선생이 학생을 교육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사동의 의미 해석 방법을 (2)에 적용해 보자. (2가)의 경우 주어인 ‘나’가 다른 사람, 곧 ‘부모님’으로 하여금 ‘친구를 (나나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행위를 시킨다는 뜻을 갖게 된다. 뜻이 이상해진다. ‘소개시켰다’는 ‘소개했다’로 바꿔야 한다. (2나)도 생략된 주어인 ‘너’가 다른 사람에게 ‘차를 주차하는’ 행위를 시킨다고 해석된다. ‘주차시키면’을 ‘주차하면’으로 바꿔야 한다. 문장 (2다, 라) 역시 어색한 뜻을 지닌다. ‘소화시켜야’와 ‘교육시키기가’를 각각 ‘소화해야’와 ‘교육하기가’로 바꿔야 한다. (2라)와 (1다)를 찬찬히 비교해 보면 (2라)의 뜻이 이상한 까닭을 알 수 있다.
한편 주어가 어떤 일을 당했음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도 있다. 이를 피동 표현이라 한다. 피동 표현 중 동사에 ‘-어지다’를 붙여서 피동 표현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가령 피동문 ‘끈이 끊어졌다.’는 주어인 ‘끈’이 끊어지는 일을 당했음을 뜻한다. 동사 ‘벗다’와 ‘벗기다’ 역시 ‘-어지다’를 붙여서 피동문을 만들 수 있는데 그 뜻이 다르다.

(3)가. 신발이 커서 자꾸 벗어진다.
나. 소반의 칠이 벗어져 보기가 흉하다.
(4)가. 신발이 꽉 끼어 잘 벗겨지지 않는다.
나. 바람이 불어 모자가 벗겨졌다.

(3)의 ‘벗어지다’는 타동사 ‘벗다’에 ‘-어지다’가 붙은 피동 표현이다. 주어인 ‘신발’과 ‘칠’이 자연적으로 또는 저절로 원래 상태에서 미끄러져 벗어나거나 떨어져 나간다는 뜻을 지닌다. 반면 (4)의 ‘벗겨지다’는 타동사이면서 사동사인 ‘벗기다’에 피동의 ‘-어지다’가 붙었다. ‘벗겨지다’는 (3)의 ‘벗어지다’와는 달리 사동사 ‘벗기다’에 담긴 ‘외부의 힘에 의한 시킴’이라는 의미를 내려 받는다. 따라서 ‘벗겨지다’는 ‘외부의 힘에 의해 억지로’라는 뜻을 갖는다. (4가)에서는 화자가 억지로 벗기려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4나)에서는 ‘바람’이 외부의 힘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마흔도 안 돼 머리가 벗겨졌다.’에서 ‘벗겨졌다’는 올바른 표현일까? 피동의 논리를 따르자면 이 문장은 외부의 힘(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머리(카락)이 벗겨졌다는 끔찍한 뜻이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빠진 상황을 표현할 때에는 ‘마흔도 안 돼 머리가 벗어졌다.’라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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