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황룡학술문학상 학술부문 우수상 수상작 (테마에세이)
B와 D사이 C
B와 D사이 C
디지털시대란 무엇일까? 나이키가 다른 스포츠회사가 아닌 닌텐도와 경쟁하는 시대인가? 나는 그 정의를 잘 모르겠으나 아날로그와 상반되는 뜻인 것을 안다. 그리고 어릴 때 보던 비디오 테이프가 넷플릭스 스트리밍으로 바뀌고 사용하던 녹색 화면의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식탁에서 신문지를 보다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모습을 지켜봐 온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농담 삼아 말하는 “라떼는 말이야”에 다리를 걸쳐 놓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느 정도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그리고 문자와 전화가 가능한 슬라이드 폰을 사용했지만 진짜 디지털시대를 몸소 느낀 것은 아마 스마트폰이 등장한 그 이후인 것 같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교 재학시절에 여느 때처럼 등교했는데 반에 좀 유복한 집의 아이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게임을 하는 것을 봤다. 그 당시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보상처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유일했던 나는 호기심에 질문을 했다. “우와 이거 뭐야?” 그 아이는 나와 같은 반 아이들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의기양양 쳐다보며 “이거 스마트폰이야 우리 부모님이 사주셨어”라고 답했고 신문물을 발견한 우리는 온갖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이듬해 대부분의 학교 아이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그때부터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매해 기능이 개선된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친구들과 문자 대신 카톡을 하며 버디버디, 싸이월드를 넘어 페이스북이 등장했다. 덕분에 밖에 외출할 때는 스마트폰과 배터리를 챙겨가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그래도 간혹 배터리가 모자라 스마트폰을 충전할 때면 마치 보이지 않는 목줄이 존재하는 것처럼 모두 그 주변을 강아지처럼 서성였다.
대다수 아이가 그러하듯 꿈이 없는 공부를 한 나는 원래의 집과 상당히 떨어진 군산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알고 지내던 반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고 무료하게 학교에 다녔고 덕분에 군대에 일찍 가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이 조그마한 디지털기기가 주변인들보다 내 인생의 가치관에 아주 큰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휴대폰에 광고 알림이 하나가 떠올랐다. “항공권 초특가 50% 할인 지금이 마지막 기회” 마치 나는 네가 지난 여름밤에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놓은 상태인데 어디에 사용할지 상당히 고민하고 있던 나였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터넷 검색기록을 이용해서 나를 조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고민을 하다가 출발 일주일 전에 비행기표를 홀린 듯이 결제했다. 준비 시간도 촉박하고 해외여행도 처음이고 해당 지역도 처음인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는 스마트폰에 의지해서 모든 의식주와 길을 찾아 헤맸다. 그 당시에는 가히 스마트폰의 추천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스마트폰이 이끌어준 선택지를 따라갔는데 마법 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한참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추천 식당 광고가 화면에 떠서 찾아갔는데 눈에 띄는 아시아 사람이 한 명 있어서 마침 울적했던 나는 말을 걸었다. “혼자 오셨어요? 혼자 오셨으면 식사나 같이하실래요?” 그 친구도 이곳에서 우리만 같은 동양인인 것을 발견했는지 “좋아요. 그런데 어디서 사세요?” 이것이 이 친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알고 보니 호주에 이민 가서 사는 한국 사람이었다. 위도 반대편에 사는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그것도 우연히! 이 호주 친구와는 그다음 날도 같이 놀았고 아직도 뜻이 잘 통해서 연락하며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나고 있다.
이후 나는 혼자 다른 여행지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주머니 사정에 스마트폰에 낮은 가격 추천 표시가 뜬 게스트하우스에 이끌려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 부부가 국제결혼 커플이었다. 한 분은 한국 사람이었는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여기서 일이나 해볼래요?” 이 모든 것이 나의 20대에 지대한 영향을 준 첫 순간이자 시작이었고 지금도 이어받은 마음을 벗 삼아 살고 있다. 만약 과거에 그때의 광고를 보지 못했더라면 시작도 못 하고 전부 못해볼 경험들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디지털 숫자 0과 1이 만들어낸 이 운명론 같은 상황을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는 하나의 종교처럼 믿고 싶었다.
과거 시절부터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들이 죽은 이후에 발견되는 오래된 벽화나 글로써 말이다. 요즘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남녀노소 나이 구분 없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게다가 SNS로 간편하게 가상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다. 해당 SNS는 새로운 경제학 용어를 (instagramability)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였다. 디지털시대가 인간의 오래된 본능을 다시 자극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 오래된 본능에 이끌려 그리고 과거에 만난 인연들과 가느다란 연결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없던 SNS 계정을 개설했다. 덕분에 간편하게 과거에 저축했던 시간을 현재에 꺼내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사람들과 그리고 내가 ‘알법한’ 그러니까 지나가면서 마주친 혹은 나에게 잊힌 사람들을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추천을 받았다. 과거 친했지만 학교와 지역이 달라지고 번호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이 닿았고 근황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결혼이나 임신 같은 축하 받는 일이나 소소한 자신의 일상 아니면 자신의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 가상의 공간에 흔적을 남겼다.
물론 안 좋은 소식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 같은 소식들도 이 공간에서 흔적을 남겼다. 평범한 어느 날 친구 부모님의 비보가 공유되었다. 친구의 말로는 정말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이었다. 워낙 갑작스러워서 친구의 부모님은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지 못하고 대신 본인 명의의 SNS 계정 하나를 남겼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이름보다 더 진한 삶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친구는 “평소에 부모님 사진이랑 동영상 좀 찍어놓을걸.” 이 말을 하면서 엄청나게 후회했는데 남겨놓은 SNS 계정을 보고 조금 위로가 된 것처럼 보였다.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적이 있는데 어릴 때 사고로 사망한 아이를 시간이 지나고 디지털 기술로 살리는 것이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되살리는 것이 아닌 아이의 부모가 가지고 있던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 가상세계에서 되살리는 것이다. VR 기계를 착용하고 아이와 생일 축하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는 충분했던 것 같다. 디지털 기술 0과 1이 사람의 마음에까지 깊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이것을 보니 머지않은 미래에는 사람이 죽어도 영원히 죽는 것만은 아닐 것 같았다. 남아있는 기록이 존재해서 지우고 싶으면 그 흔적을 묻어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벌써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life)는 b (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장 폴 사르트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고 우리 인생에 실제로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나도 스마트폰의 추천 광고로 여행을 출발했고 삶이 크게 바뀌었는데 만약에 광고가 없었더라면?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어서 그 선택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현재의 결과물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지털시대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정말 중요한 선택이라는 부분을 크게 관장하는 것 같다. 특히나 포노 사피엔스(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라는 말도 등장할 정도로 스마트폰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평소 나의 곁에서 선호도와 기록을 모두 모아서 내가 좋아할 만한 인물. 음악, 의류, 식당, 장소 등이 있으면 끊임없이 추천해준다. 만약 지금도 내가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다면 큰 시간 낭비 없이 이달의 맞춤 추천 음악 안에서 음악을 고를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성인이 된 이후부터 사용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사용하는 아이들은 더욱 발전한 디지털 기술에 더 의존하고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결과는 잘 모르겠다. 대개 나의 탄생을 지켜본 부모 말고 나만큼 나를 잘 아는 무엇인가가 또 생기는 것이다. 스마트워치, 스마트안경, 사물인터넷 등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모든 곳에서 나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자동으로 추천을 하고 우리는 그것의 범주 안에서 따른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가 자주적인 삶을 사는 것인지 죽을 때까지 디지털의 추천 범위 안에 따라서 살지는 모를 일이다. 어찌 보면 만날 사람까지 추천해주는 디지털시대 속에서 디지털은 BCD 모두를 관장하는 세속의 신이 될지도 모르겠다.
군산대학교 무역학과 4학년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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