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언의 해적 4> : 낡은 백일몽을 버겁게 지탱하는 유연한 캐릭터의 힘
‘잭 스패로우’, 그의 공식적 직함은 무시무시한 해적선장이지만, 사실 그는 대책없는 귀염둥이이다. 재잘대는 폼은 그야말로 참새 같은데(스패로우), 날렵하면서도 재치있는 동작들은 수컷의(잭) 매력을 물씬 풍긴다. 수녀원에서 정진 중이었다는 여성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았건만, 한참 후 재회하게 되어 이를 고백하는 그녀에게 그가 던지는 맨트는 그저 왕싸가지의 전형이다: “난 그 때 그곳이 술집인지 알았는데, 정말로!” 양 팔을 자유분방하게 휘저어대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흔들흔들하는 걸음거리를 연출해내며, 가능한 대로 와인병을 빨아대는 이 불안한 악동! 깜작거리는 작은 쥐눈을 빛내면서, 순간순간 작고 큰 자신의 이득을 염치없이 챙겨대지만, 결국 스스로 위기의 구렁텅에 빠지고, 기발한 재치로 상황을 반전시키며 간신히 모면해가는 이 아담한 남자는, 이 터무니없는 여름철 블록버스터 시리즈호에 실린 사실상 유일한 보물로서, 그것이 4편까기 이어지는 동안 캐리비언 베이에 건재하면서 8년째 그곳의 물살을 가르며 즐겁게 ‘배를 타는’ 중이다. 이 모두가 꽃미남류의 배우 ‘죠니 뎁’이 50줄에 가까워지는 사이 개발해낸 프렌차이즈 문화상품의 결과이다.
사실 영화는 주연배우의 캐릭터만큼 성공적이지 않다. ‘젊음의 샘’을 찾아가서 무슨무슨 컵을 확보하고 특별한 레시피를 완성하면 희한한 일이 벌어진단다. 인어의 눈물을 담은 컵을 마신 사람이 다른 컵을 마신 사람의 나머지 수명을 접수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허무맹랑한 전설을 단선적으로 쫒는 ‘순진한(?)’ 인간들의 이야기는, 그 멍청함과 맹랑함이 도를 넘는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는 백일몽에 가깝고, 거듭되는 시리즈의 반복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신선한 소재들도 다 소진된 느낌이다. 급기야는 무슨 인어떼의 습격이 가장 무서운 모험담의 일부로 설정되고, 생포된 인어와 그를 붙잡도록 도운 선교사간 처연한 러브스토리가 진부한 부산품으로 끼워져 러닝타임을 늘린다.
언뜻 하나하나의 씨퀀스는 그 자체로서 시청각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각각의 상황은 그 앞 뒤 맥락 속에 자연스레 연결될 수 없음을 아무리 게으른 관객이라도 금방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제작진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끝없이 뻗어나가는 상상의 고삐에 아무런 죄는 힘을 가하지 않는다. 이내 체념한 관객은 더 이상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의 질문을 거두어들이고, 그저 순간순간의 액션과 긴장 그리고 유머 혹은 새로운 이야기 자체를 즐기자는 심산으로 137분의 운명을 받아들일 뿐이다.
헐리우드 발 거대계절상품이 개연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책임한 ‘시청각적 표현의 난무상태’가 된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80년대 ‘인디아나 죤스’ 시리즈가 독보적인 클리프행어의 모범을 세운 후, 거의 모든 시즌대박상품의 내용을 채워온 것이 바로 이런 류의 ‘무개념 화상’으로 구성된 디럭스판 액션꾸러미였다. 자유로운 정신으로 무장한 B급 무비의 활력을, 1억 달러어치가 넘는 첨단기술로 구사하는 A급 프로젝트로 2차평면상에 현실화하는 아이러니가 계속되어왔던 것이다. <캐리비언의 해적4>도 터무니없는 내용의 스토리라인을, 정교한 기술공학이 일시적인 사실성으로만 현재화하는 허무한 액션과 상황설정의 연속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기괴하고 공허한 공간에, 우리의 잭 스페로우 선장이 뒤뚱거리며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그의 동작에 맞추어, 평소 강직하고 육중한 합주로 묵직한 감동을 촉발하던 ‘한스 짐머’ (<더 록>, <라이언 킹>, <인셉션>)의 스코어가 이례적으로 경쾌하게 꿈틀대는 톤의 현을 그어댈 때, 관객은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이 상큼한 캐릭터에 미소를 보낸다. 과연 ‘쟈니 뎁’이라는 불세출의 유연성을 가진 한 배우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상황이다. 허나 언제까지 이러한 진부한 판타지의 버거움을 한 주전멤버의 개인기로만 버티게 할 것인가? 비록 현재 박스오피스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올 여름 블럭버스터 행진의 팡파레를 울리고 있다고는 하나, <캐리비언의 해적5>를 다음 해 초여름에도 열광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제작을 맡은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은 보다 참신한 브랜드로 새로운 프렌차이즈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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