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른 봄, 3월 25일 군산대 155학군단 4학년 37명은 5일간의 군사문화탐방을 위해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우리와 애증으로 얽힌 섬나라일본은 우리가 미워하고 무시하는 나라지만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고 경험해볼만한 선진국가이다. 그 일본을 우리 ROTC 4학년 후보생들이 다녀왔다.
에메랄드 빛 바다너머로 육지가 보인다. 8시, 입국심사를 거쳐 설렘과 기대감으로 두근대는 마음을 지니고 일본 땅에 발을 디뎠다. 대중매체로만 간신히 접했던 일본이 눈으로 생생히 들어왔다. 대체적으로 낮은 건문들과 작고 앙증맞은 자동차들이 일본만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겼다. 우리가 내린 항구 도시 시모노세키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군산바람 뺨치게 매섭고 찼다. 우듬지가 높이 치솟아 기울은 대나무로 빽빽한 산들을 지나 버스에서 처음 내린 곳은 동양 최대의 와불상이 있는 남장원이다.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일본이라더니 과연 엄청났다.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온갖 신상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남장원의 핵심, 세계 최대 와불상은 어마어마한 크기가 입을 딱 벌어지게 했는데 압도될 만큼 큰 크기와는 대조적으로 집에서 TV를 보는 듯한 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모습이 친근감을 느끼게도 했다.
학군단에 들어온 지 벌써 일년이 지난 지금, 우린 숨가쁘게 달려왔고 위로와 쉼이 필요했다. 해외군사탐방은 우리에게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이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재충전의 기회로 보내는 것도 좋지만 해외군사탐방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되었다. 이 탐방의 진짜 목적은 전쟁의 폐해와 처절함이 묻혀있는 나가사키에서 그 아픔의 무게를 몸소 느끼고 고통을 상기하여 진정한 평화를 마음속에 아로새기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우린 싱그럽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기분이 좋은 둘째날 아침, 맑고 개운한 공기를 한껏 들이시고 버스에 올랐다. 전쟁의 비극을 품은 도시, 나가사키의 원폭 피폭지를 가기 위해서였다.
시내의 좁은 도로를 따라 들어선 평화의 공원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심 속의 여타 공원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평화의 공원에 이르자 거대한 평화의 기념상이 눈에 들어찼다. 오른 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원자폭탄을 가리키고 수평으로 쭉 뻗은 왼 손은 평화를 상징하고 지그시 감은 눈은 피폭자의 명복을 빈다고 한다.근육질의 기념상은 남성적인 강인함을 느끼게 했는데 듬직하게 고인의 혼을 위로하는 듯했다. 기념상을 비롯한 여러 크고 작은 동상들이 세워진 광장을 가로질러 원폭 투하지점에 다가섰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히로시마에 이어 이 곳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약 15만 명의 사상자를 낸 바로 그 중심에 서서 눈을 감고 그 때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새삼 인간이 두려웠고 한편으론 들풀처럼 살아난 생명력이 놀라웠다.
피폭당시의 물건들이 고스란히 전시된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의 시간 속에 갇힌 시계와 무너져 내린 천주교 성당, 동강 난 나선형 계단과 녹아내린 유리병, 그을린 자갈, 땅속 깊이 묻혀버린 그릇들... 참담했던 그 날의 참상이 드러났다. 녹아내린 피부, 방사능에 오염된 아이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간 사람들의 사진들은 끔찍해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이나 별 생각없이 둘러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각 전시물들이 의미하는 바를 직시함과 동시에 비참하고 처참한 인간의 비극사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여러 나라에서 핵을 보유하고 있고 지금 지구촌은 평안함을 가장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고 언제 핵이 발사될 지 아무도 모른다. 부디 처참하고 비참했던 역사를 가슴깊이 새겨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각국이 상호협력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일본군사문화탐방은 전액 학교의 지원으로 다녀 올 수 있었다. 학군단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채정룡 총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관심과 지원에 상응하는 눈부신 활약으로 군산대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겠습니다. 끝으로 인솔을 해주신 학군단장 이충희 중령님과 행정보급관 박정남 상사,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원해주신 총동문회장 전용갑 선배님과 원당교회 허영길 목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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