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성화 아래 하나 된 열정, 2018 평창

그 열정이 내 몫일 줄이야

장세희 기자
- 7분 걸림 -

 매일같이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진짜 갈 거야?’ 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계속되어왔던 올림픽 자원봉사자에 대한 논란은 개막식이 다가올수록 잦아졌다. 열악한 식사와 잠자리며, 셔틀버스에 대한 불만까지, 직접 가기 전 귀로만 들었던 평창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주저만 하다가 2월 5일, 무브인(Move in) 날짜가 되었다. 이른 새벽, 평창으로의 여정에 올랐다.

 평창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UAC 센터’(Uniform distribution and main Accreditation Centre)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데에 필요한 유니폼과 AD카드를 발급받는 일이었다. 개막식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의 무브인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UAC 센터 내부가 혼잡해질 수 있으니 다양한 시간대를 이용해달라는 공지를 받고 이른 아침에 센터를 방문했지만, 이미 센터 외부까지 인산인해를 이룬 상태였다. 그렇지만 막상 센터 안으로 들어가 AD카드를 발급받고 유니폼 등 물품을 받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뒤 나는 양 손에 한가득 짐을 들고 숙소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Olympic Sliding Centre)의 야경 / 촬영 : 장세희 수습기자

 

 루지와 스켈레톤, 봅슬레이 경기가 운영되는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ASL-Alpensia Olympic Sliding Centre)에서 근무하게 된 나는 ‘BRS 부서’(Broadcasting Service)에서 ‘방송 통역’(BRS Interpreter)업무를 배정받았다. BRS 부서의 자원봉사자는 출근 후, 담당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두 팀으로 나뉜다. 한 팀은 선수가 경기를 시작하는 ‘스타트 하우스’(Start House)에서, 또 다른 팀은 선수가 경기를 마치는 ‘피니쉬 하우스’(Finish House)에서 근무한다. 스타트 하우스 근무를 배정받은 팀은 TM 버스(미디어 인력 수송 버스)에서 하차한 기자들을 취재 가능 구역으로 안내하고 접근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구역으로 기자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피니쉬 하우스 근무를 배정받은 팀은 주로 경기를 마친 선수를 인터뷰하는 구역인 ‘믹스드 존’(Mixed Zone)과 ‘베뉴 미디어 센터’(Venue Media Center)를 오가며 기자들이 사전에 부여받은 접근 권한에 따라 해당되는 구역으로 기자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나는 20일간 슬라이딩 센터에서의 업무를 소화해갔다.

 평창에서의 하루하루가 금빛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를 기록하는 야외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서 있어야 했다. 근무 막바지에는 배정받은 팀 내에서도 두 명씩 조를 짜서 교대 근무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유니폼으로 제공되었던 방한화는 밑창이 너무 얇아 방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자원봉사자들은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발을 녹여야했고, 결국 사비로 양말 부착형 핫팩을 구매했다. 그러나 몰아치는 추위보다도 열악했던 건 셔틀버스 운영 체계였다. 기자는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로부터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강원도 원주에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근무 초기에는 인력 부족으로 급하게 올림픽 현장에 투입 된 운전사분들께서 노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버스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서 근무에 지각하거나 늦은 새벽에 숙소에 도착하는 일이 잦았다. 버스가 길을 잃는 경우도 빈번했다. 가장 큰 문제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자원봉사자 인원에 비해 배차되었던 버스가 지나치게 적었던 것이었다. 매일 1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렸지만 그 중에 45명만이 한 대의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셔틀버스 승차장으로부터 꽤 먼 거리를 숨이 차게 뛰었지만 하는 수 없이 막차를 타는 날이 더 많았다. TW 버스(운영 인력 수송 버스) 운영 부서로 수차례 전화를 걸었고, 담당 매니저에게 셀 수 없이 항의했지만 결국 폐회식까지도 자원봉사자들은 ‘다음에 올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믹스드 존(Mixed Zone)에서 인터뷰 중인 대한민국 봅슬레이 남자 4인 팀의 모습 / 촬영 : 장세희 수습기자

 

 기록을 경신해가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향한 열정은 나날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25일, 나는 남자 4인승 봅슬레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자원봉사자로의 근무를 마쳤다. 고단함이 짙었지만 세계인의 축제,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속해있다는 것이 매 순간 자랑스러웠다. 근무환경과 추위에 대처하는 노하우가 생기자 그간 가져왔던 불평불만도 기쁨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 쉬는 날에는 친구가 된 자원봉사자들과 강릉 올림픽 파크에 방문해 평창과는 다른 분위기를 즐기기도 했다. 폐회식 전 날, 동고동락했던 BRS 팀원들과 한 방에 모여 후일담을 나누며 그제야 올림픽의 공식 슬로건 ‘Passion, Connected'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열정이 자신의 몫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분명한 건, 평창에서 보낸 나의 스무 날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뜨거웠다.

 

▲20일간 희노애락을 함께했던 BRS 두 명의 매니저와 열 한명의 자원봉사자 / 촬영 : 장세희 수습기자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