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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위해 권위주의적 사고 탈피하라

안영태 기자
- 7분 걸림 -

대부분의 존재는 크든 작든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 중에서 특히 나 인간은 사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존 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것처럼 인간은 온전히 타인 혹은 사회와 독립해 살아갈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옛날에는 무리를 짓지 않아 맹수에게 쉽게 잡아먹혀 죽었다면, 현대에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당해 정상 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 간이 매번 선택을 하듯 사회도 더 나은 사 회로 나아가기 위해 선택을 하는데, 이 과 정에서 중요한 건 소통이다. 흔히 사회나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좋은 선택은 구성 원간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나타난다.

옛날, 무리의 장(長)은 육체적 강함이나 오랜 경험을 내세우며 대부분 일방적인 결정을 해왔다. 장은 지시를 했고 수하는 그 지시를 따랐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회에는 민주, 다양성, 평등의 개념이 생 겼다. 소수에 의해 결정되던 시대에서, 다 수에 의해 선택된 자가 다수를 대변해 결 정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거기에 더해 세계화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인을 평 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다양하고, 민주적인 소통방식 은 때론 기발하거나 선진적인 선택을 하 는데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의 기업들이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 해 인사제도를 개편하는 것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이익에 민감한 기업들이 수평적
문화조직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그만큼 소통과 결정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 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부산대는 총장 선거에 직선제를 부활시켰다. 교육부 또 한 국립대학 총장임용에 대학 구성원 합 의제를 제시하는 등 구성원의 의견을 수 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산대의 경우 학생 비율이 1.3%로 미미하고, 대학 구성원 합의제 역 시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소통이 잘 되고 있지 않다는 걸 말한다. 중 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소통이 잘 이뤄지 지 않는 이유는 소통이 권위적으로 이뤄 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나이 나 직책과 같은 권위를 내세워, 소통마저 권위주의적으로 하려는 문화가 강하다. 그렇기에 토론과 같은 수평적이고 쌍방향 적인 소통문화를 이끌어 내는 건 많은 노 력이 필요하다. 기업과 같은 이익집단은 자본가의 결정이 중심이기에 수평적 소통 을 이끌어 내는 데 특히나 많은 노력이 필 요하다. 그러나 국립대학은 상대적으로 쉽게 수평적 소통을 형성해 낼 수 있다. 국 립대학은 자본이익의 극대화보다는 학문 연구에 더 치중하며 결정권 역시 자본가 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소통하기 쉬운 환 경을 가진 우리 대학과 같은 국립대학들 이 구성원 간에 올바른 소통1)이 되지 않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권 위주의적으로 소통하려는 방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다 깊은 이유는 대
학 구성원의 공동이익을 위한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대학 구성원이 권위 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공동을 위해 피해 를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몇몇 은 자신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특히 구성 원을 대표한다는 자들이 ‘공동이익을 위 한 주인의식’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대학 내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주인인 이유가 저마다 있다. 교수는 연구·교육 활 동을 책임지기에, 직원은 행정적인 업무 를 담당하기에, 학생은 구성원 중 다수이 며 자신들이 없으면 학교의 의미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대학은 구 성원 모두의 것이기에 ‘나만이 주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톱니바퀴 에 하나의 부품이 빠지면 돌아가지 않듯 이 대학과 대학 구성원의 관계도 마찬가 지다. 당장 직원이 없으면 행정적인 업무 가 마비돼 교수는 연구·교육에 집중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대학은 존재목적을 달성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품 하나가 톱 니바퀴 자체가 될 수 없듯이 한 구성원이 대학 자체가 될 순 없다. 모든 부품이 역할 을 제대로 할 때 톱니바퀴가 비로소 잘 돌 아가기 마련이다.

9월 23일 마무리된 축제 전에 주류를 어 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총학생회와 본부 간의 토론이 여러 차례 열렸다. 19일 첫 번 째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 느낀 게 있다. 학생회는 자신이 대학의 주인이라는 권위에 빠져 본부 측을 무시했다. 학생회 내부끼리만 이야기할 뿐 진행과정을 공유
하지 않았다. 보직자와 직원은 학생의 입 장을 이해하기보다 총장의 결정을 따라야 만 한다고 했다. 학교의 방침이며, 보직자 와 직원이 결정한 사안이라 생각했기 때문 이다. 자신들만의 권위에 빠져 올바른 소 통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어 진 토론을 통해 축제가 진행되기는 했으 나, 그 과정은 성숙하거나 성숙해지는 과 정의 지식인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조직은 상하가 구분될 수밖에 없다. 대 학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권위주의적 소통을 탈피해 올바른 소통을 하기 위해 선 과도한 주인의식을 내세우기보단 서로 를 인정해줘야 한다. 구성원이라고 정의 하는 순간 이미 그들을 인정한 거라 할 수 있다. 대학본부, 교수평의회, 직장협의회, 학생자치기구는 대학의 구성원이다. 올바 른 소통을 위한 노력은 자신 스스로가 발 전하는 과정이며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 정이다. 대학 구성원이 권위주의적 사고 에서 탈피해, 평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 도록 노력하는 지성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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