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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로 보는 군산 역사의 한 페이지

미곡취인소, 선양 고가도로 등 소설에서 표현된 군산의 실제 공간 알아보기

이유리 선임기자
- 7분 걸림 -
▲ '탁류' 책 표지 / 출처 : yes24

 백릉 채만식의 『탁류』는 군산 역사가 담겨있는 저명한 소설이다. 주된 내용은 그 당시의 전형적이고 비극적인 여성상을 띄고 있는 ‘초봉’의 이야기다. 1930년대의 작품인 만큼 일제강점기의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곳곳에서 지금의 군산을 발견할 수 있다. 초봉의 아버지인 ‘정주사’가 ‘미두’를 하던 장소와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인 콩나물 고개, 초봉의 남편이었던 ‘고태수’가 근무했던 조선은행 등이 그 예시이다. 이에 이번 기획에서는 『탁류』의 일부분을 분석하며 군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쌀 노름의 현장, ‘미곡취인소’]

▲ 군산 미두장 당시 모습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타논의 세상 이야기'

 ‘미두’란 현물 없이 쌀을 팔고 사는 일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에 쌀의 자율 거래가 금지되면서 조선 전역의 쌀 거래를 일제에서 독점적으로 장악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 쌀의 시세 차익을 놓고 노름이 행해졌다. 노름할 때는 오늘날 주식을 할 때 주식시장을 통해 돈을 거래하듯이 ‘미곡취인소’(이하 미두장)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졌다. 1932년에 개장한 군산 미두장은 전국에 있는 미두장 중에서도 큰 규모였고 충청, 전라의 갑부들이 모였지만 일본인과 비교하면 정보와 자금이 매우 부족하여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쌀값의 10%만 있어도 미두를 할 수 있었으나, 소설의 정주사는 그 돈도 없는 절치기꾼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절치기꾼은 미두장 안으로 들어갈 돈이 없어 바깥에 머물며 변하는 시세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어려운 형편 탓에 정주사는 큰딸인 ‘초봉’을 결혼시키게 된다. 현재 미두장은 내항 쪽에 터만 겨우 남아있지만,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미두장이 재현되어있어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다.

 

[콩나물고개, ‘선양 고가도로’]

 

▲ 선양고가도로로 가는 계단 / 출처 : 다음 블로그 '하늘타리정원'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개복정 콩나물고개의 토막집도 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주로 평지에 조성되어있는 조계지에 거주하고, 조선인들은 개복동에서 창성동으로 올라가는 이 콩나물고개에서 많이 거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경사가 많이 완화되었지만, 책에는 ‘제비 같은 오막살이집들이 달라붙었고 올라가는 좁다란 골목길은 코를 다치게 경사가 급하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현재는 ‘선양 고가도로’가 생겼는데, 여기에 정주사집 탁류 소설 비가 세워져 있다. 선양 고가도로에 걸어 올라가기는 아직도 힘든 경사이긴 하지만, 올라가면 소설 속에 나오는 장소 등 우리 지역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동시대의 장소, ‘탁류길’]

 이미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장소들과 동시대에 함께한 장소들, 함께 방문해보면 좋을 장소들이 ‘전북 천리길’의 44개 노선 중 하나인 ‘탁류길’로 형성되어있다. 책을 먼저 읽고 탁류길을 따라 걸으면 처음 가는 곳이라고 해도 언젠가 한 번 방문해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앞서 설명한 장소 외에도 초봉의 남편이었던 ‘고태수’가 근무한 조선은행, 초봉과 사랑에 빠졌던 ‘남승재’가 “환장한 인간들로 더불어 동물로 역행”한다고 언급했던 개복동 유곽도 탁류길로 구성되어있다. 개복동 유곽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운영되었는데, 2002년 개복동 화재 사건으로 폐쇄되고 지금은 ‘예술인의 거리’로 불리고 있다. 또한, 코스 중 하나인 미즈카페 뒤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동상이 있다.

 

[‘여미랑 게스트하우스’와 ‘신흥동 일본식 가옥’]

 소설의 주인공들 말고, 당시 일본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하다면 ‘여미랑 게스트하우스’와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미랑 게스트하우스는 일제강점기에 쌀 수탈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였던 곳이고,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당시 포목점을 운영했던 ‘히로쓰 게이사브로’라는 일본인이 거주했던 주택이다. 전통 일본 가옥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콩나물고개가 이 근처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인들의 설움을 좀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독서 Tip!]

 소설 『탁류』는 △우리 대학 중앙도서관 지하 융복합자료실과 △3층 인문과학자료실 또는 △황룡도서관 1층 황룡교양필독자료실에서 대출할 수 있다. 역사책의 사실적인 내용을 넘어서서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고 싶은 학우 모두에게 읽어보길 권장한다. 다만 ‘합수지다’, ‘우줄거리다’ 등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단어 해설이 없는 책이라면 사전과 함께 독서를 하는 것이 편하다.

 

▲ 탁류길 약도 / 출처 : 군산시청

 안내도에는 2~3시간이 소요된다고 되어 있지만, 책에 나오는 장소와 실제 장소를 비교하며 찬찬히 살펴보면 하루 안에 다 보기가 어렵다. 독서 진도에 맞추어 시간이 날 때 책 속 인물들과의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일제강점기의 군산 거리와 지금의 군산 거리가 상당히 일치하는 것을 보면, 이 책을 단순히 소설로 보기보다는 생생한 역사책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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