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뇌”
새로운 세계로 출발하거나 과거의 쓰라린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할 때, 혹은 사랑을 고백하거나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늘 새롭게 출발해야 하고 좌절하면 일어서야 하며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용기의 출발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최근 수년 동안 일본 사회 최대 화두는 인간의 “뇌”다. 일반인 대상 교양서적들도 많이 나왔는데 일본과 한국 베스트셀러가 된 하루야마 시게루(春山茂雄)의 『뇌내 혁명』(脳内革命)이 그 단초를 끊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인지과학이나 뇌 과학, 신경 과학이 일반인들에게 관심을 얻고 있다. 뇌 속 세계가 인간 이해의 주요 루트가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낯선 세계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은 뇌의 중심부에 위치한 강낭콩 모양의 편도체가 관여한다. 뇌는 과거의 기록이 전혀 없는 무언가를 위험 신호로 파악하고 체내의 모든 신경과 근육을 경계 태세로 전환시킨다. “나”라는 개체를 위험에서 구하고자 차비를 갖추는 것이다. 이 때 코티솔(cortisol)이라는 신경조절 물질이 편도체와 시상하부를 자극하는데 이 자극이 두정엽에 전달되어 근육을 움직이면서 위기 상황에 대비하도록 만든다.
또 다른 예로 실패했던 일에 다시 도전하려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사지가 후들거린다.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실패한 옛 기억은 편도체 가까이에 있는 해마라는 부위에 저장되어 있다.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다시 도전하려는 순간, 대뇌피질에서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란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어 심장박동을 억제하고 혈압을 낮춰 극도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용기를 짓누른다. 하지만 동시에 뇌하수체에서 바소프레신(vasopressin)이라는 신경조절 물질이 분비되어 심장 활동을 강화시켜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다.
그 밖에도 뇌 속에서 많은 신경 관련 물질들이 다양하게 작용하여 인간의 감성 발현에 관여한다. 남성 호르몬의 대표주자라 하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물질은 좌절로부터 새로운 시작을 추동하는 ‘용기’ 호르몬이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이것은 더 이상 용기가 아니라 ‘공격’이 된다. 이러한 테스토스테론에 대해 관대와 용서의 호르몬이 옥시토신(oxytocin)으로 뇌하수체에서 분비된다. 어머니와 자식, 혹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활성화되는 옥시토신은 결국 타자로 말미암아 생긴 불안감을 억제하고 상대를 신뢰하며 나아가 용서하고 이해하는 ‘용기’를 만든다.
물론 용기라는 마음 속 자세를 뇌 속 화학물질과 무매개적으로 직접 연결시키는 데는 여러 한계들이 존재한다. 생리학적 차원의 뇌 활동 자체가 알려진 것보다 아직 모르는 것이 훨씬 많고, 이념이나 가치관 같은 고차원적 정신활동, 혹은 무의식의 세계는 뇌 생리학이 설명해 내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인간이 울고, 웃고, 화내고, 즐거워하는 감성이 이런 호르몬 분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라는 오감의 경험이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번잡하기만 하여 귀차니즘이 만연한 오늘날, 세상을 오감으로 느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용기는 햇빛과 자연, 그리고 직접적인 ‘만남’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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