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마지막 신문을 발행하며
‘수습기자’라는 직함을 이름 옆에 달고 내가 쓴 기사가 처음 지면에 실렸을 때 무한한 책임감과 뿌듯함을 느꼈고 앞으로 써나갈 기사에 항상 최선을 다 하겠다 다짐했다. 그 뒤 3년 간 서른 네번 신문을 발행했으며, 백여 번의 마감을 했다.
3년 전 처음으로 기사를 작성하던 나의 밤은 서툴고 엄숙했다. 원고지 세 장 분량의 기사를 작성하며 늦은 밤까지 스탠드를 켜놓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작성한 기사를 선배들에게 들고가면 퇴짜 맞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않아 깜빡이는 커서를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이야 글이 써지지 않으면 밖에 나가 바람도 쐬고 커피한잔 할 수 있는 여유 정도가 생겼지만 당시의 나에게 원고지 세 장을 써나가는 일은 그 무엇보다 낯설고 힘든 일이였다.
신문사의 수습생활은 대학 새내기가 견디기에 힘들었던 것 같다. 처음 입사할 때 열 세명의 동기가 있었지만 삼 년이 지난 지금 단 두 명의 동기만 나와 함께 신문사에 남아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낯선 신문사에서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가장 부러웠던 존재는 선배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내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신문사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해냈다. 또 나와 동기들의 몫이었던 청소, 접지, 출입처 등 각종 잡다한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기사를 작성해 가면 지적하고 다시 작성할 것을 요구하는 ‘윗사람’들이었다.
임기 말이 된 지금 다시 생각해 보건데 당시의 선배들은 결코 편하지 않았으리라. 선배 기자들은 단지 우리 동기들과 하는 일이 달랐던 것이지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일을 덜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풋내기인 우리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자료수집과 기사 작성에 투자했을 것이고 후배들이 어설픈 솜씨로 기사를 들고 오면 책임감을 갖고 후배를 좀 더 기자답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자리에 앉았을 때 비로소 당시 선배들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아무도 없는 신문사에 나와 자료실을 뒤져 지난 3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배들이 이뤄 놓은 신문들과 녹슨 캐비닛에 쌓여있는 사진을 들춰봤다. 부끄러웠다. 이전에도 종종 지난 기록들을 들춰보긴 했지만 그때에는 “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선배들과 같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3년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더 이상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그들의 기사와 사진에는 열정과 노력이 묻어있었다. 3년 전 처음 기사가 지면에 실렸을 때 마음속에 새겼던 다짐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지난 3년간 신문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에 익숙해졌고 나의 열정은 그 익숙함에 빛이 바랬음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을 찾았다. 지난 시간 동안의 부족함을 느꼈고 이를 수정해 발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마지막은 사람들에게 순간 미련, 후련함, 아쉬움 등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반성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을 마주한 사람들은 자신이 지나온 길에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그때 사람은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은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더 이상 창의적이지 못한 문장을 좋아한다. 모든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이며 마지막을 경험하고 성장한 사람의 새로운 시작은 지난 시간 동안의 시작들보다 더 유창할 것이다.
이번 470호를 끝으로 군산대학교 언론사 대학신문사 2013학년도 편집장이 보내는 ‘황룡담’이 막을 내린다.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듯 올 해가 지나 내년 1월이 되면 새로운 편집장의 황룡담이 여러분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껏 부족한 황룡담을 지켜봐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내년 새로운 편집장은 더 발전한 신문, 더 내실 있는 황룡담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감사하다.
편집장·김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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