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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봄에 심은 것을 수확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흔히 봄에만 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시사철 심는다. 상추는 봄에, 들깨는 여름에, 배추는 가을에 심고, 마늘은 겨울에 심는다. 분명히 1학년 때 씨를 뿌렸는데 분명 발아를 하지 않은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4학년에 발아를 하는 녀석도 있다. 자연에서는 한 번 떨어진 씨앗이 몇 년, 심지어는 몇 십년간 발아를 하지 않다가 산불이 난 다음 해에 발아를 하는 종자도 있다고 한다.
근 10여년 0교시에 학생들과 영어를 함께 공부하였다. TOEIC점수가 자기신발 크기인 240~280mm에서 시작하여, 소인국에서 걸리버마냥 700으로 훌쩍 커버린 아이들!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고맙다고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 심었어! 열매를 맺었어!”
그런데 요즈음 토양은 척박하기만하다. 환경 또한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친구가 가꾸는 밭에 가보았다. 배추를 심었는데 배추 1포기 근처에 셀 수도 없을 만큼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나는 게 아닌가?
잡초는 제거하면 되지만, 우리 학생들은 제거할 수도 없다. 갈수록 학생들의 고민도 많겠지만 우리 교수들도 그만큼 부담이 된다. 그래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아래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주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씨앗을 뿌려두면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가르치면 언젠가는 스스로 커 나갈 수 있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심는다는 것은 키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심었다고 해서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도 길 위에, 돌밭에, 때로는 옥토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우리 학생들을 보면 모두가 옥토에 떨어진 것만은 분명 아닌 것 같다.
“비전 있는 대학생활 설계” 과목을 강의한 지 벌써 4년째다. 3, 4학년 학생을 상대로 수강 당시에 작성한 포트폴리오를 놓고 면담을 해보았다. 연구원이 되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이제 그 목표는 어디로 갔는지? 단기 및 장기 계획을 세우고 2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고 했는데 그간 실천한 것은 별로 없고 한숨만 쉬는 학생을 보면서 괜한 공염불에 그쳤나 싶다. 이제 4학년이 되어 곧 취업을 해야 하는데 마음만 앞서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라도 자격증도 따고 영어도 공부하고 싶단다. 지금 이력서도 써보고 포트폴리오도 점검해 봐야겠다. 조금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라는 책이 생각난다. 비록 가을이지만 지금 씨앗을 뿌린다고, 결코 늦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뿌리면 반드시 거둘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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