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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과 방조는 한 끗 차이일 뿐이다

노신영 선임기자
- 5분 걸림 -

 지난달, 수면위로 떠오른 ‘N번방 사건’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N번방 사건이란 미성년자 등 여성들의 성 착취 영상이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되고 유포된 성범죄 사건을 말한다. 내가 그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포털의 검색 키워드를 통해서였다.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땐 분노의 감정이 앞섰는데,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먼저 N번방 사건의 시초가 지난해 2월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난해 N번방 사건은 최초 운영자가 권한을 위임한 후 다음 운영자가 체포돼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관련 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하지 못했다고 한다. 같은 사건임에도 왜 지난해에는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는 N번방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접하는 이들도 많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번에는 사건의 뿌리를 뽑아내고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이들이 많았기에 이처럼 큰 이슈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난해 사건이 크게 화두가 되지 못한 것은 N번방 사건을 접하고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만 하고 넘긴 이들이 많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해 직접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것, 우리는 이를 ‘방관’이라고 부른다.

 나는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의 이면에 숨겨진 방관적인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SNS를 통해 N번방 사건에 대한 누리꾼들의 의견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N번방 참가자들을 향해 ‘방관’과 ‘방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방조란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방법이나 형태에 상관없이 범죄행위를 수월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방관과 방조의 의미는 사전적으로 명확히 나누어져 있지만 그 본질은 꽤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도 모른 척 지나가는 경우, 따돌림을 목격했음에도 침묵하는 경우,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보고도 무심코 지나는 경우… 이는 우리가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방관의 상황들이다. 하지만 막상 상황에 놓이면 상황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굳이?’ 혹은 ‘괜히 나섰다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이처럼 방관의 심리 안에는 타인의 존재가 개입되는데, 문제는 침묵을 깨는 이 없이 다수가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경우에 발생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수에 속해 있을 때 안심하며 그 상황의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침묵을 깨는 소수보다는 다수의 침묵이 만연해있으며, N번방 역시 다수의 방관이 낳은 씁쓸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N번방에 돈을 지불한 사람이 방조이지, 호기심에 잠깐 참가한 사람은 단순 방관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다수의 방관이 지속되면 가해자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고, 결국 그 현장의 모든 이들은 범죄에 가담한 방조자가 되는 것이다. 방관과 방조에는 한 끗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순식간에 타인을 위험에 몰아넣는 칼날이 될 수 있다. N번방 사건으로 인해 방관의 위험성이 환기되긴 했으나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서 방관은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다. 때때로 우리에겐 자신의 잣대에 맞춰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대담함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굳이 어떤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다수의 의견을 먼저 살피기보다는 스스로 먼저 생각하고 답을 내려 봤으면 한다. 그러한 시도가 모이고 모여 무심코 지나쳤던 당신의 발걸음이 다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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