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며칠 전 보도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81%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한다.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이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 부모들은 교육에 힘을 쏟았고, 이러한 교육열이 우리나라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조사결과는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상승의 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오늘날 교육은 계층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청출어람’은 가능할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쪽에서 나온 푸른색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나타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청출어람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 학생들에게 있어서 지식과 의지를 분리시키는 대입과 취업을 목표로 하는 교육 때문이다. 청출어람이 강조하는 것은 배움에는 단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중·고교의 교육 목표는 오로지 대입이고, 대학은 취업률의 노예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입과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의지는 여지없이 사그라진다. 학생들에게 지식은 대입과 취업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도구로서의 지식, 그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다.
둘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오직 앎(지식)을 매개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스승은 알고 있는 사람이고 제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승은 자신의 앎(지식)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고, 제자에게 그 이상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결국 스승과 제자는 분리되고, 고대 희랍의 철학자 제논의 역설에 등장하는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를 이길 수 없는 아킬레스처럼 제자는 절대로 스승을 넘어설 수 없다.
셋째, 스승에게 있어서 배움(학문)과 가르침(교육)의 분리 때문이다. 『예기(禮記)』의 「학기(學記)」에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를 키운다는 말이다. 교육자는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여 다시 가르침으로써 스스로를 발전시켜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에게 배움과 가르침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교육자에 대한 평가 제도는 교육자로 하여금 이를 스스로 분리하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모든 청출어람의 사례를 보면 뛰어난 제자에게는 항상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이는 훌륭한 스승 없이 청출어람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는 스승, 즉 교육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자 스스로 분리된 지식과 의지, 스승과 제자, 배움과 가르침을 다시 변증법적 관계로 재정립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며, 이를 교육을 통해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자의 자각과 실천 없이 우리 교육은 정상화 될 수 없다. 교육의 주체는 교육자이며, 한 나라의 교육의 질은 교육자의 질을 결코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시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을 느끼며, 교육자로서의 나를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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