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발언권 전쟁 중
최근, 흥미롭지만 마주할 일 없으리라 생각했었던 단어와 마주하게 됐다. 바로 ‘블랙리스트’이다. 이는 ‘정부의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란 뜻을 가졌는데, 이 단어를 접했을 때 흡사 IS와 같은 엄청난 범죄 테러 조직들에게 붙을 법한 단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다면 비교적 조용한 우리나라에서는 볼일 없겠군’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유명 영화배우로 인해 이 단어를 또다시 마주치게 됐다.
배우 정우성의 팬모임에서 팬들이 영화 ‘아수라’의 한 장면인 "박성배 앞으로 나와!"를 즉흥적으로 말해주길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요청에 그는 영화 속 대사가 아닌 자발적 외침으로 “야, 박근혜 너 나와!”라고 외쳤다. 그런 그가 내가 알던 무시무시한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잠깐 동안, ‘블랙리스트’가 유치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함부로 말해 ‘블랙리스트’에 올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아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가 공인으로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반정부적인 행동을 했다고 한다. 이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정부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에 반정부적인 행동으로 치부된다고 한다. 정우성의 사례뿐만이 아니다. 여당 후보인 문재인과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문화예술인들 또한 우리나라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버젓이 올라가있다. 이런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총 8,000여 명에 가까운 엄청난 수의 문화예술인들이 등록되어있다.
정부 측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사람들은 다양한 압력에 시달린다고 한다. 방송인이라면 출연하기로 예정된 방송에서 갑작스럽게 취소된다든지, 영화제작사라면 영화지원예산을 삭감하는 등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발언을 올린 이들에게 공포심을 준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해 내가 가진 발언권을 사용함으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위협이 다가올 때, 대부분은 이런 공포를 없애기 위해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발언을 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나의 발언권을 빼앗겨버렸음을 의미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하위 주체들임을 부인할 순 없다. 위에서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 대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수직적 구조 속의 하위 층들. 그러나 촛불이 요동치는 대한민국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런 하위이면서도 ‘주체’를 함께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릇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발언을 통제받아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계속해서 발언권을 양보하다간 언젠가 중요한 외침을 설 자리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국이 들썩인다. 이와 함께 동요되는 다른 방면의 문제들도 직시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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