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술교사가 청각장애자학교에 부임되어 온다. 무심하고 무기력하던 학생들의 분위기에 당황해하던 중, 그는 여학생 화장실 옆을 지나가다가 고통스런 여자의 비명소리에 놀라 움찔하지만, 이내 벙어리들은 가끔씩 이상한 소리를 낸다는 학교 수위의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현장을 중계하는 음향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점잖음에 목숨 걸던 교장의 소행으로 말이다.
신임교사가 교수의 추천 덕에 50% 할인가격으로 현금으로 납부하는 학교발전기금 5,000만원, 재단의 친인척과 약점일색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립학교의 행정팀,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교사와 기숙사 사감의 무차별 폭행, 교장실과 기숙사 등에서 벌어지는 어린 학생에 대한 성폭력, 교장으로부터 넉넉하게 두툼한 봉투를 챙기며 만족한 표정으로 덕담을 건내는 경찰, 학교성폭력에 관한 고발을 방과후 상황이기 때문에 시청의 소관사무라고 떠미는 교육청의 담당장학사, 같은 신념을 유지하는 단체의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다(장로)는 이유로 맹신적으로 교장을 비호하는 종교단체의 사람들, 자식과 손자에게 일어난 반인륜범죄에 대해 대단치 않은 경제적 보상을 대가로 합의해주는 정신적 물질적 결함의 학부모들, 그리고 무엇보다 영향력 있는 법관자리에서 갓 물러나 사건을 맡는 변호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습. 여기에 유명 로펌 행에 대한 약속에 벅찬 기대를 안고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적 증거를 숨기는 검사까지 그 목록에 끼어든다.
이쯤 되면 요리사 입장에서 무척 반길만한 풍성한 재료의 모음이 되겠다. 사실 이제 『도가니』의 제작자들이 할 일은 이것들을 그 도가니탕에 넣을 순서를 정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2시간 넘게 달구어진 이 요리가 관객에게 전해주는 맛은 무척이나 뜨겁고 또 매운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슬프게도 이 모든 요소들이 우리사회의 현 모습들에 대해 유지하는 근사치 만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영화는 말미에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불의에 항의하는 절망적인 집회를,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으로 다스리는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그 맵고도 우울한 맛에 대해 매우 적절한 디저트를 함께 선사하고 있다.
영화적으로 『도가니』의 완성도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영화는 직접화법으로 주제를 전하고 해석함에 있어, 투박하고 거칠다. 한국사회 부실요인의 종합세트를 구성하고자 하는 기획의 밀도를 높이기 위하여, 사건과 인물 및 그 환경은 때로 인위적 구성과 배치를 감당해야만 했다. 중심 에피소드를 구태여 시청각적인 재연에 의존하는 바람에, 청각장애학생들의 수화에 의한 성폭행 피해경험의 진술내용도 감각적 증폭을 겪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회의 모순에 대해 직접적으로 분석하고 드러내는 몇몇 대목은 작품 속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사고발프로그램의 리포터가 정리해주는 멘트를 더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도가니』의 뒷맛이 너무도 좋다. 이 뜨거운 메뉴를 음미하면서 분노의 도가니에 빠져보는 일은, 보다 건강한 우리사회의 건설을 위해 필수적인 보약을 복용하는 일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치유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말미에 시사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충고한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우리를 바꾸게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우리사회가 전체적인 개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깨달음과 함께, 소극적인 저항이라는 현명한 지혜를 실천할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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