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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

박미혜 선임기자
- 5분 걸림 -

 우리는 책부터 시작하여 노래,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좋은 사람’과 관련한 내용을 접하곤 한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전에서도 ‘좋은 사람’에 대해 명확히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이 단어에 부합하는 이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칭한다.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자리하고 싶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나도 한때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곰곰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응당 내리지 못했고, 잇따라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다. 거울을 보며 연습했던 웃음을 내보였고, 상대가 듣기에 좋은 말들만을 건네었으며, 상대가 하는 부탁을 어렵지 않다는 듯 들어주며 언어부터 비언어적 행동까지 상대의 입맛에 맞는 나를 만들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어느 순간, 표정을 넘어 언행에 스며들었다. 웃는 얼굴, 먼저 건네는 다정한 말과 행동까지, 원래 이게 나였는지 내가 노력한 것인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레.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충분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듯, 나는 끝까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진 못했다. 좋은 사람으로서, 행해왔던 언행이 그대로 돌아온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항상 웃던 내가 상처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인지 무심히 말로 상처를 주었던 사람, 이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듯 부탁하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회자되는 것에 대한 시기, 질투 등 나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을 상향시켰다. 또한, 이 시기 나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해 일어난 일들이라며, 스스로를 책망하고 채찍질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발버둥이 몸부림을 넘어 고요해질 때쯤, 나는 차츰 나만의 주관을 뚜렷이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하는 선의만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스스로에게도 이로운 존재가 되었으면 했다. 어쩌면 이는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나의 지친 마음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에 옳고 그름을 명확히 했고, 수십, 수백 번 속으로 연습하고 되뇌었던 거절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물론, 이로 인한 상대의 놀람과 뒤이어 입맛을 쩝 하고 다시는 모습이 이후, 누가 재생 버튼을 연속으로 누르는 것 마냥 다시 생각나곤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내 곁을 금세 떠났고 또, 누군가는 앞뒤 과정은 생각도 하지 않은 체 내 언행만을 타박하며 고개를 홱 돌려 떠나버렸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진심을 보고, 나를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거울 속 웃는 내 모습이 보기에 예쁜 미소였다고 하더라도 나는 수줍지만,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웃는 것이 좋다. 또,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이들에게 반복적인 리액션보다 다소 진중한 분위기가 형성되더라도 내 생각을 들려주고 싶다. 더불어, 이런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두에게, 나도 당신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게 스스럼없이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꾸밈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상대를 향한 진심을 보여주는 이가 진정 ‘좋은 사람’이라고 전하며, 이번 황룡담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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