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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근현대 역사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배소연 기자
- 5분 걸림 -

 우리의 삶이 영위되는 대부분의 공간은 건축 공간이다. 인간은 건축 공간 속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일하고, 먹고, 휴식을 취하고, 생활하면서 일평생을 보내다가 건축 공간 속에서 생을 마친다. 때문에 건축물에는 인간의 모든 삶의 모습과 기억이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건축물에는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그 도시 또는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군산의 근현대 역사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건축물은 어떤 건축물일까? 개인적인 의견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군산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봉’이라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어둡고 혼탁한 사회 현실을 묘사했던 채만식(1902∼1950)의 장편소설 ‘탁류(濁流)’에서 초봉이와 결혼했던 은행원 ‘고태수’가 근무한 ‘××은행 군산지점’이 바로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이다. 채만식은 탁류에서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1930년대 군산 구도심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푸른 지붕을 이고 섰는 ××은행 앞까지 가면 거기서 길은 네거리가 된다. 이 네거리에서 정주사는 바른편으로 꺾이어 동녕고개 쪽으로 해서 자기 집 ‘둔뱀이’로 가야 할 것이지만, 그러지를 않고 왼편으로 돌아 선창께로 가고 있다.”
“∙∙∙∙∙ 미두장은 군산의 심장이요, 전주통이니 본정통(本町通)이니 해안통이나 하는 폭 넓은 길들은 대동맥이다. 이 대동맥 군데군데는 심장가까이, 여러 은행들이 서로 호응하듯 옹위하고 있고 심장 바로 전후 좌우에는 중매점들이 전화줄로 거미줄을 쳐놓고 앉아있다.”
1930년대 푸른 지붕을 이고 서 있었던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시설로서 1923년에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당시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건축가 나까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와 이와사끼 도쿠쇼(岩崎德松)가 설계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군산지역에서 전하는 말로는 이 건물이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때에 인질로 잡혀온 독일인에 의해 설계되었고 중국인 석공들에 의해 시공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나까무라 요시헤이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인 건축가 안톤 펠러(Anton Feller)가 이 건물 설계에 관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철근콘크리트와 벽돌조 건물로 지붕은 함석판을 이은 모임지붕으로 처리하였다. 주출입구는 정면 중앙에 두었고 측면에 부출입구를 두었다. 외벽에는 부분적으로 타일을 붙였다.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중앙의 웅장한 현관과 양 측면 모서리의 돌출로 대칭성과 수직성을 강조하여 금융기관으로서의 권위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정면과 측면에는 평아치창과 반원아치창을 설치하였고, 아치창 주변, 상하층 창문사이와 외벽 중간 부분에 장식을 두었다. 물매가 급한 지붕 경사면 중간에 수평으로 긴 고창을 두어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처리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던 이 건물은 해방 이후 조선은행이 한국은행으로 바뀌고, 한국은행이 전주로 이전된 이후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다가 유흥시설로 바뀌었다. 이때 건물의 전면부와 내부가 많은 부분 개조되었고, 1990년대에 화재로 내부가 소실된 이후 방치되어 왔다.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건물은 군산시의 근대문화도시 조성 사업의 중심 건축물로 현재 수리, 복원 공사 중에 있다. 조만간 전시시설로서 시민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출항으로서 발전했던 군산이 해방이후 수출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쇠락해온 과정과 탁류에서 묘사되었던 일제강점기의 어두웠던 사회현실, 한 때 군산에서 번성했던 유흥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건물로서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지역민에게 있어서 달갑지 않은 현실이면서 동시에 안타까운 애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건물이 군산시의 계획에 따라 근대문화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거듭나고, 군산이 새만금과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다시 과거의 활력을 되찾는다면, 이 건축물 역시 군산시민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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