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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財閥 3세가 보여준 ‘용기있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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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한 財閥 3세가 보여준 ‘용기있는 선택’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절실하다.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기득권층의 솔선수범 정신과 도덕적 책무가 살아있어야 한다. 며칠 전 일간신문에 소개된 한 재벌 3세의 ‘용기있는 선택’은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기분 좋은 뉴스이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득권층의 도덕적 책무라고 할 수 있는 솔선수범과 모범정신이 중요하다. 그 정신이 선행되었을 때 사회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최태원 SK 회장 둘째 딸 민정(23)씨가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입영한 것이다. 그동안 재벌가 딸이라면 부모 잘 만나 고급호텔이나 음식점,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고급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여자로 떠올려졌다. 하지만 민정 씨는 달랐다. 고등학교 때는 방학이면 편의점이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고 베이징대학교 유학시절에는 한국 유학생을 상대로 입시강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면접관이 해군에 지원한 이유를 묻자 민정씨는 “영국 탐험가 새클리턴의 리더십과 도전정신에 감동을 받아서”라고 답했다.
새클리턴은 아일랜드 출신 탐험가이다. 그는 1914년 27명의 승무원과 함께 범선 인듀어런스호(號)를 타고 남극탐험에 나섰던 인물이다. 배가 떠다니는 얼음덩이에 갇히는 바람에 2년 넘게 얼음 위에서 생활했다. 새클리턴은 목숨 같은 비스킷을 대원에게 양보하고, 펭귄을 잡아먹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강력한 정신력으로 희생, 절제, 창의력을 실천하면서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남극의 빙벽에서 634일을 견디며 전 대원을 무사히 살려냈다. 극한 상황에서도 진정한 리더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민정 씨는 새클리턴이 보여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극복한 리더십을 해군에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절실하다. 영국 왕실의 앤드루 왕자는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전쟁 때 헬기조정사로 참전했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가 보유하고 있는 엑조세미사일은 영국군함에 치명적이었다. 바다의 수면 위로 바짝 붙어 저공으로 날아오는 엑조세미사일의 방향을 교란시키려면 헬기조정사가 목숨 걸고 미사일의 진행방향에 쇳가루를 뿌려 미사일이 군함으로 향하지 않고 위로 솟구치는 방법만이 가능했다. 이 위험한 일을 왕위 계승 4위인 왕자가 했다. 그리고 월리엄 해리왕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했다.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은 6.25전쟁 때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회이의 참모로 근무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미군장성의 자식들이 대거 참전했고 이중 36명이 전투 중 숨졌다.
스웨덴에는 삼성과 현대차를 합친 정도로 덩치가 큰 재벌인 발렌베리가문이 있다. 이 가문은 5대를 내려오면서 CEO(최고경영자)가 되려면 해군장교로 복무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 독일의 가전업체 밀레그룹도 후계자의 요건에 군복무가 필수다. 지금 밀레 회장인 라인하르트 진칸 역시 기갑부대 장교출신이다.
우리나라 재벌 중에도 SKC 회장 부자(父子)가 해병대 지원입대 했고, 쌍용그룹 오너였던 김석원, 석준 형제도 자식까지 해병대 가족이다. (조선일보 기사 참조)
그러나 상당수 재벌3세는 이중국적제도를 악용하거나 각종 편법을 동원해 병역의무를 피하고 있다. 있는 집 자식은 군대에 빠지고, 없는 집 자식만 고생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은 배가 고파 봐야 음식이 귀한 줄 알고, 힘들게 훈련을 받아 봐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에게 비친 재벌 3세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부모 잘 둔 덕에 고급 외제차를 타고 별장에서 호화스럽게 생활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비상장계열사에 그룹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거액의 배당금을 챙겼다. 그리고 비상장사의 덩치가 커지면 주식시장에 상장, 주식을 팔아 거액을 벌었다. 6.25때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가면서 방송으로 안심하라고 했던 대통령, 임진왜란이 터지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던 선조와 다를 게 없다.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기득권층의 솔선수범 정신과 도덕적 책무라고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살아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영국 왕실이 오랜 세월 동안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고 그들만의 귀족문화를 향유할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그들의 기저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가장 먼저 선봉에 섰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2차 대전 때 전사한 장교의 숫자가 병사들의 배가 넘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어떤 사회나 힘 있는 자, 가진 자가 솔선수범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국가든 기업이든 미래가 없다.
이번에 민정 씨가 보여준 용기 있는 도전은 사회의 규범이 되고 새로운 리더의 희망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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