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팬이라면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1968년작 『혹성탈출』의 전복적 상황설정과 마지막 장면이 준 충격을 잊지 못한다. 먼 미래, 원숭이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벤허』의 매력남 ‘찰톤 헤스톤’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저토록 흉칙하게 생길 수 있느냐고 한탄해하면서 동물보호 차원에서 반체제활동을 진지하게 벌이는 암컷원숭이 박사의 활약상을 당시 관객들은 씁쓸한 유머로 받아들여야만 했었다. 그리고 그가 관객과 함께 최종적으로 목도하는 장면은 반토막 난 채로 쓰러져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이는 당시 한창이던 동 서 냉전이데올로기 대립이 가공할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핵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인류문명을 한 순간에 폐허로 만들 수 있다는 경고를 발하면서, 탐욕과 대결로 점철되어온 인류의 기계문명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들의 해방투쟁을 담은 활극의 형태로 그 후 4편이 더 만들어져 70년대 초반 동안 가장 성공적인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원조를 자청하였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바로 이 시리즈의 원천을 더듬어 찾아보려는 시도로, 그러한 전복적 상황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5편의 선배 혹성탈출 시리즈에 대한 충실한 프리퀄로서라기보다는, 새로운 형식과 의미를 담은 채로 ‘원작의 리부트!’를 감행하면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얻기 위해 원숭이들을 생체실험하다가 뇌의 인지기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키는 신약이 개발된다. 이 약의 투여로 인간의 지능을 지녔지만 인간의 목적을 위해 착취되고 학대받는 처지에 대해 각성을 하게 된 유인원들은, 이제 인간에 맞서 혁명을 일으킨다. 그들 중 일부는 물론 처참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후손은 인간의 지능을 소유하게 될 것이고, 더욱이 이 신약은 인간에게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화시대의 발달된 교통 통신망은 그 바이러스의 확산을 재촉한다. 이쯤 되면 역사의 주인이 바뀌게 되지 않을까?
영화는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인물들과 그들간 관계들에 대한 매우 촘촘한 묘사로 임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 속에는 여러 침팬지들이 당당히 포함되며, 인간 배우의 표정과 동작에 맞추어 정교하게 덧입혀진 CG는 이 유인원들의 연기가 이야기의 전개에 자연스럽게 부합되도록 한다. 사실 이 영화의 인간 주인공들은 CG로 구축된 원숭이 군단에 의해 압도되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은 원숭이 주인공 ‘시저’의 탄생과 성장, 수난, 각성, 지도자로의 성장 및 집단 봉기의 감행 등 ‘유인원판 출애급기’의 도식을 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인공 ‘시저’의 기쁨과 염려, 갈망 및 분노 등이 인간의 복잡다단한 온갖 표정과 동일한 형태로 그대로 재현되며, 이러한 다양한 표정과 성격들은 주요 유인원 배역들 각각에 대해서도 고르게 배당되어 입체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리하여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영화표현의 확장을 위한 ‘CG 진화의 시작’을 알리는 ‘실사영화탈출’의 유의미한 시도로도 영화사에 남게 될 것 같다.
이러한 눈부신 CG 기술의 구사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인간과 유인원간 ‘대교전투’에서, 자연스런 스팩터클을 가능케 한다. 현수교의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구조 탑들 사이로 늘어진 케이블들 사이와 밑으로 날렵하게 이동하는 수백 마리의 유인원들이 인간 경찰대원들과 헬기 등의 무기에 대항하여 벌이는 전투는, 그 자체로 역동성과 장대함을 갖춘 장면으로서 시각적 쾌감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이 거대한 전투를 치열하게 이끄는 ‘시저’는 안정적이지만 속박의 장에 불과한 인간 집으로의 귀환 요청에 대해 ‘드디어!’ 육성으로 “노우”를 외친다. 그리고 이 단호한 “노우”는 이 장면의 투쟁이 완결될 때까지 반복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계급과 노동 및 관습에 속박되어 있는 민중들의 잠재적 외침을 반영하는 ‘대담한 우화’로서 기능하기를 결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3년 전 인류 문명에 대한 따끔한 지적으로 출발한 원작의 심오함을 더 은근한 톤으로 진화시킨 결과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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