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인가 시민들의 이동권 탈취인가
2021년 12월 3일,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여의도역을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기습시위를 진행하면서 긴 싸움의 거대한 서막이 올랐다. 이후, 전장연은 시위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였고 잇따라 시위에 이용된 지하철 노선과 역사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더군다나 지난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시위는 현재까지 계속 진행 중에 있으며 규모와 빈도, 지자체와의 갈등 역시 더욱 커져 갔다. 정권을 넘나들며 전장연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고, 출근과 퇴근 시간을 노린 시위가 계속되자 불편함을 호소하며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전장연에게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 최근 서울시의 무정차 통과 운행이라는 강경 대응으로 전장연 시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상황에서, 전장연의 시위가 시작된 배경과 현 상황에 대한 냉철한 고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시위를 시작하면서 전장연의 ▲요구는 크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탈시설 지원 △장애인 교육 보장 △예산 확대 네 가지이다.
실제로 이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 지난 5월 29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통합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으며, 역시 지난 6월 21일,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시에서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조례가 제정됐다. 여기서 탈시설이란, 장애인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아 자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탈시설에서 전장연과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이하 부모회)와의 갈등이 빚어졌다. 부모회에서는 지난 3월에서 5월 사이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본인은 극단 시도를 한 사건이 총 3건이 있었음을 언급하며, 탈시설이 진행된다면 독박 돌봄에 대한 부담 호소와 발달장애인을 24시간 돌볼 수 없는 장애인 거주 시설 부족을 토로하는 한편, 장애의 특성과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며 장애인의 인권을 빌미로 이권을 챙기겠다는 것이라 하는 등 두 집단 간의 엇갈린 시선이 존재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정부를 상대로 처우 개선에 대해 요구했다면 일반 시민들이 등을 돌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며, 오히려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장연 시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담하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전장연의 요구와 시위 방식에 있다. 먼저, 작년 기준 장애인 복지 예산인 약 3조 6,783억 원 중 탈시설에 할당된 예산을 약 24억 원에서 6,624억 원 수준인 259.3배 증가를 요구했다. 그 외 내년 장애인 활동 지원예산으로 2조 9천억 원 편성을 요구하는 등 경제적으로 상당한 금액의 요구를 하고 있다. 다음으로, 시위의 방식 관련이다. 전장연의 시위 방식은 단순한 가두 행진이나 요구사항이 적힌 피켓 등의 방법이 아닌, 직접적으로 대중교통의 운행을 방해하는 형식으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옆문으로 옮겨 타거나 출입문과 스크린 도어 사이에 휠체어 바퀴를 집어넣어 스크린 도어 개폐를 방해하며 열차를 지연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왕십리역의 스크린 도어가 파손되는 사고가 생겼으며, 지하철 운행이 최대 138분 진행되는 등 원활한 운행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더군다나, 지난달 7일부터 매일 4호선 시위에 돌입한다고 하는 등 일반 시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계속되고 있다. 시위 진행 시간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가장 몰리는 시간인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주로 진행하고 있으며, 주로 8시에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일반적인 회사의 출근 시간이 9시인 것을 감안한다면 시간대 역시 일반 시민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러한 점들이 일반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서울시에서는 대통령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13일부터 전장연이 지연 시위를 진행하는 역을 무정차 통과하겠다 발표했으며, 이 여파로 14일 오전 8시 48분경, 4호선 삼각지역에서 당고개 방면으로 가는 열차 한 대가 무정차 통과를 진행했다. 사상 초유의 무정차 통과라는 선례가 남겨진 지금, 앞으로 무정차 통과라는 사례는 계속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전장연은 4호선, 특히 삼각지역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데 삼각지역은 현재 대통령실과 가장 가까운 역사로, 전장연이 대통령실을 겨냥해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장은 당연시되어야 하고, 복지 국가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부족한 준비 상태에서 과도한 요구와 이를 얻기 위한 과격한 방식 또한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전장연의 시위의 목적은 분명히 수용 가능하다. 하지만, 급격한 예산 증가 편성 요구와 일반 시민들의 이동권을 볼모로 잡은 현재 방식은 절대 일반 시민들에게서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없다. 하루빨리 정부의 대책 마련과 평화적인 시위 방식이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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