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길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이 시의 제목은 박찬옥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요. 사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표현은 시나 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그리 생소하지 않습니다. 질투라는 감정 자체가 참 흔한 감정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때로 우리 삶의 추진력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 작품은 곳곳에서 짙은 회한과 탄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라는 구절이 중간에 직접 나오고 있기도 하지요. 무엇이 이토록 깊고 어두운 탄식을 하게 만든 것일까요. 우선은 “질투”라는 감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요. 질투는 사실 참 치사한 듯 불편한 감정입니다. 전적으로 시인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애써 부인하기도 쉽지 않은 미묘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요. 질투는 때로 여러 가지로 변신을 하기도 합니다. 분노나 증오 같은 격정적인 모습이나, 혹은 체념이나 무관심 같은 소극적인 모습, 또 때로는 오기나 집착으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앞서 언급한 동명의 영화 줄거리를 조금 덧붙이자면,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뒤, 묘하게도 그 남자의 삶에 대한 선망과 동경의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말하자면 질투의 대상을 닮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청춘을 돌이키면, 누구나 그때 기록할 것이 많았고, 머뭇거렸고, 질투뿐이지 않았던가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삶에 대해 할 말이, 다시 말해 변명할 것이 많지 않았던가요. 그럴 때 자신의 삶이 마치 남의 삶인 것처럼 낯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기도 하나 봅니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는 고백은 결국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자책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구절들을 “우선 여기에 짧은 글”로 남겨두겠다고 전제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마지막 두 행의 진술은 다시 작품의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라고 순환하는 구조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이 작품에서나 박찬옥 감독의 영화에서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질투는 사실 나의 힘이 아니라, 상대방에 비해 초라한 듯한 자아의 불안정한 내면 심리, 다시 말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나는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지금,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요. 곰곰 돌이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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