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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학생을 위하는 방법

학점편식현상

김의한 선임기자
- 5분 걸림 -

수강신청 변경기간 후배 한 명이 고민스런 표정으로 찾아왔다. A라는 전공과목을 신청하려고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수업은 발표도 많이 시키고 계산하는 것도 많아 어려울 것이라며 수강하지 않기를 권했다는 것이다. 고민하던 후배는 결국 선배들의 말에 겁을 먹고 A과목 대신 교양과목을 수강하기로 결정했다. A과목은 해당 학과의 기초과목이고 3,4학년 때 수업을 듣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었는데도 말이다.

매 학기 초, 이런 광경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할지 물어보면 선배들은 반드시 들어야 하고 도움이 되는 수업을 추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을 해도 쉽게 학점을 얻을 수 있는 과목을 추천해준다. 그리곤 마치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 것같이 생색을 내기도 한다.

각 전공마다 학생들이 4년간 해당 학문을 공부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목들로 교과과정을 구성해 놓는다. 그 중 전문분야나 전공분야에서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목 혹은 학년이 올라가 각론을 배울 때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선수과목들을 전공필수로 지정하곤 한다. 이렇게 지정된 전공 필수 과목에는 당연히 학생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과목들이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지난 2009년 우리 대학은 전공필수과목 지정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에는 학과에서 정해놓은 필수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었지만 전공필수과목 지정 제도가 폐지된 이후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만 수강해도 졸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공 필수 과목이 없어지자 어려운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기피현상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자신과 맞지 않거나 높은 학점을 취득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강의는 신청하지 않기 시작했다. 굳이 고생하며 어렵게 느껴지는 과목을 공부하지 않아도 편하게 학점을 채울 수 있는 방법 즉 학점편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2012년 31학점으로 제한돼 있던 교양학점 제한이 사라지면서 학점편식을 하는 학생들이 더 쉽게 학점편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이 마련됐다. 마음만 먹으면 졸업학점 140학점 중 어렵게 느껴지는 전공과목을 피해가면서 전공과목에 부여된 72학점을 제외한 68학점을 자신의 입맛에 맞고 쉽게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교양과목으로만 선택해 수강해도 졸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현재 4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인 경영학과 ㅇ학우는 자신이 현재까지 수강한 교양학점이 60학점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전공필수 제도의 폐지와 교양제한 폐지 등이 학생들의 자율권과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학생존중이라는 말로 보기 좋게 포장한 채 대학이 학생들을 방치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은 학교를 믿고 비싼 등록금을 내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뒷받침해줄 의무가 있다.

대학이 자신의 분야에서 문외한인 상태에서 졸업장만을 받고 사회에 나가는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대학이 학점편식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결과를 학생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라며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이보다 더 추한 모습은 없을 것이다. 자식의 가정교육이 잘못됐다면 이를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 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편집장 · 김의한

han@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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