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요짜요
곰팡이였다. 유난히 색이 예쁜 멍인 줄 알고 가만 놔뒀던 며칠 새 곰팡이는 제법 더 피어 있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한참동안 겨드랑이를, 흐드러진 곰팡이꽃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아아, 빠아? 아빠아……. 오소소 소름 돋은 혓바닥이 치열을 포근히 쓰다듬었다. 수줍음을 못다 감춘 목소리가 주황빛 화장실을 명명히 울렸다. 몇 년 새 훌쩍 커버린 날 보고 깜짝 놀란 곰팡이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윽고 꿈틀, 화답했다. 그 느낌이 너무 간지러워 나는 하얗게 이를 보이며 웃고 말았다.
엄마
엄마는 눈물이 많았다. 겨울비가 억셌던 어느 십이월, 뱃속에 내가 들어찼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후론 더 자주 울었다. 내 발길질이나 어설픈 맨손체조에도 금세 울먹이는 엄마를 위해 나는 태아 시절 내내 조금 덜 움직이고 조금 더 많이 자야 했다. 나만의 세포를 갖게 된 지 스물다섯 주 만에 남을 배려하고 나를 다스리는 법을 깨친 셈이었다. 태아보다 더 아이 같았던 엄마 덕에 나는 그 말고도 꽤나 고생해야 했다. 음식물 대신 눈물만 부어다준 태반의 수고로 분홍색 자궁이 늘 짜디짰던 것이다. 눈물에서 고작 이 퍼센트뿐인 소금이라지만 내게는 망망한 사해처럼 느껴졌다. 쥐죽은 듯 숨을 실룩이면 아직 모양도 안 잡힌 콧속으로 소금 냄새가 들어왔다. 고소한 두부나 우유 따위를 기다렸던 나는 깜짝 놀라 기침을 하려다가, 도리어 엄마가 놀랄까 숨을 참아버렸다. 그때마다 눈가로 눈물이 찔끔 새어나갔다. 덜 싼 오줌마냥 찝찝한 기분으로, 나는 그렇게 홀로 눈물까지 배우고 있었다.
쓸데없이 바빴던 십 개월이 지나 마침내 고대하고 고대하던 날이 왔다. 구세주 의사 선생님의 손에 거꾸로 매달려 세상으로 탈출하면서, 나는 그동안 엄마에게 쌓인 불만을 조리 있게 터뜨리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따발총처럼 발사될 말들을 곱씹으며 나는 있는 힘껏 입을 벌렸다. 목구멍으로 옥구슬 같은 글자들이 또르르 흘러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응급실에는 곧 공기 중의 긴장감을 찢어놓는
와아앙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미 눈물을 터득한 신생아의 울음소리는 유달리 우렁찼다. 그 날만을 기다리며 줄곧 가슴 떨었던 내 말들 대신 주위에서는 건강한 출산을 축하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폭포수처럼 시원한 소리였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억울해져 와앙 와아앙 계속 울었다.
정작 말하는 방법을 생각지 않았던 나도 문제였지만, 사실 그 순간의 내 말들은 목구멍 밖까지 나왔다 뭔가에 놀라 도로 숨어들었다. 짜디 짠 자궁과 이제 영원한 이별이라는 행복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그때껏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짠 냄새가 내게 두 팔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엄마만큼이나 낯익었던 사람, 아내가 출산을 앞둔 날마저도 신나게 바다헤엄을 친 뒤 소금물을 뒤집어쓴 채 병원으로 달렸던 사람. 부부는 닮는다더니 아뿔싸, 그 냄새는 바로 우리 아빠 것이었다.
아빠
출생신고를 받기 전까지 나는 내 이름이 당연히 ‘조오련’일 거라고 터무니없이 자신하고 있었다. 자궁에서의 매일 밤, 모차르트나 베토벤 할아버지의 고급스런 클래식 대신 ‘조오련은 얼마나 뛰어난 수영선수인가’라는 주제로 아빠의 설교만 주구장창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낱말이 반 이상이었지만 어찌됐든 아빠의 목소리에는 칭찬과 기대가 반지르르했고, 나는 그것이 나보고 이 다음에 꼭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백일기도 같은 건가보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나를 품에 처음 안고 ‘오련아!’ 대신 ‘유수야!’라고 불렀을 때 나는 혹시 부모님이 바뀐 게 아닐까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조오련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나서는 한숨까지 쉬며 안심했다. 아직 살 날 많고 꿈 많은 여자아이에게 ‘오련’보다는 ‘유수’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드는 법이었으니까.
조오련은 아빠의 오랜 롤모델이라고 했다. 조오련의 삶은 아빠의 꿈이고 이상이었다. 내가 나조차 모르던 시절 엉뚱한 사람에 대해서나 해박해지도록 만들어놓은 아빠는 이제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조오련 조오련 노래를 불렀다. 아빠는 언젠가 자신이 이 지구상의 온 바다를 넘나드는 수영선수가 되어있을 거라고 틈만 나면 선전포고했다. 아주 무모한 얘기였지만 그 말을 할 때 아빠는 이미 한 마리의 범고래처럼 자유롭고 다부져보였다. 나는 아빠의 그 자신만만한 표정과 목소리가 좋았다. 자제할 줄 모르고 흘러넘치는 기운이 내게로까지 전해져 그 순간만큼은 나도 어떤 꿈을 꾸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지 아빠는 가슴만 꿈에 부풀었지 머리로 현실을 볼 줄은 몰랐던 이상주의자였다. 꼬박 대낮을 들여 수영을 연습하던 아빠는 슬슬 도를 넘어섰다. 새벽 일찍부터 집 앞의 바닷가에 뛰어들어 온종일 물장구를 치고는 밤늦게야 소금 냄새를 몰고 돌아왔다. 아슬아슬 참고 있던 엄마도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빠는 술 대신 염분으로 고주망태가 되어 아무 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술에는 해장국이라도 있지 바닷물에는 딱히 뭐랄 게 없었고, 아빠는 점점 대책 없어졌다. 덕분에 나는 이 세상엔 우리 엄마 말고도 아이보다 못한 어른이, 또 이해할 수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무수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어느 날 아빠는 우리와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제 인근 바다를 넘어 머나먼 해협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안고서 평소처럼 바다로 나섰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올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었다. 당시 열 살이었던 내가 봐도 아빠의 수영 실력은 한참 부족했으니까. 나는 조오련을 꿈꾸던 아빠는 좋았다지만 그래도 아빠는 우리 아빠이길 바랐는데, 아빠는 조오련을 너무 존경했던 나머지 아예 그 사람이 되고 싶었나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조오련은 그냥 조오련일 뿐인데.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은 언제나처럼 소금에 취해 벌겋게 방에 기어 들어와선 벽에 철썩 기대앉은 것이다. 몸속에서 파도라도 치듯 정말 철썩 소리가 났다. 아빠, 오늘은 어디까지 갔다 왔어요? 내가 묻자 아빠는 지친 개처럼 혀를 내밀고 헥헥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을 본 지도 벌써 까마득히 오래였다.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아빠와 함께 사라졌다. 아빠 덕에 완전히 눅눅해져버린 벽에 곰팡이만 끊이지 않고 피어오를 뿐이었다. 바다라던가, 지나칠 정도로 낙천적인 아빠와 잘 어울리는 코발트색 곰팡이였다. 그 자리로 밤만 되면 바삐 떨어지던 바닷소리는
또옥
똑
아주 청량했다.
그리고 잠시 아빠 얘기에 밀려난, 졸지에 과부가 되어버린 불쌍한 우리 엄마는.
아니다. 엄마 얘기는 조금만 쉬었다 하고 싶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얘기를 늘어놓아서 그런지 목도 아프고, 너무 많은 기억을 끄집어낸 머리까지 울리는 것 같다. 실은 무엇보다도, 눈물 많은 사람의 세상살이를 맨입에 꺼내자니 별안간 콧잔등이 시큰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지만.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가 조금은 필요하겠다.
소금아이
나는 한달음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방심하는 찰나 뿌예질 것 같은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세면대에 도착하자마자 입구 마개부터 닫고 수도꼭지의 고개를 치켜 올렸다. 동그란 꼭지서 앙증맞은 물줄기가 쏟아지며 오목하게 물이 차올랐다. 생명수라도 되는 냥 나는 허겁지겁 얼굴을 갖다 박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을 정도로 눈물은 무섭게, 사무치게 터져 나왔다. 나는 잠수하듯 더 깊숙이 고개를 넣고서 한참을 끅끅거렸다. 수면 위로 울음소리가 샐 만하면 물이 목구멍을 파고 들어왔다. 그 배려에 안심하며 나는 연거푸 눈물을 들이켰다.
아빠의 포부만큼이나 자제할 필요가 있었던 엄마의 감수성은 철부지 남편이 사라진 후 아예 정점까지 치솟았다. 이제 엄마가 느껴선 안 되는 것은 태아의 발길질이나 체조뿐 아니라 아빠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 모든 것이, 평생을 아내보다도 조오련에 바쳤던 남편의 별난 삶 덕에 소금냄새와 바다라는 범위서만 머무른다는 거였다.
아빠를 찾아내라 경찰서에 난리를 친 날부터 오년이 흘러 실종신고가 자연히 사망선고가 된 후, 우리는 깊은 산골로 이사했다. 나는 해산물을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사방이 숲으로 우거진 집에 적응하기까지 며칠간은 굉장히 우울했다. 산골에는 산나물이 있다지만 가장 중요한 맛이 없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우울해야 했다. 소금이 통째로 사라진 새 주방에서 음식이란 음식은 죄다 밍밍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나였다. 바다와 눈물에게서 태어나고 자라다시피 한 내게선 아주 어릴 적부터 이유 모를 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간 병원에선 몸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온몸이 발개져라 때밀이로 박박 밀어도, 하다못해 엄마 몰래 욕조에 설탕물을 가득 채워놓고 몇 시간 씩 몸을 담그고 난 후에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나는 도무지 날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금 냄새에게 서러워 방방 뛰었고, 아까운 설탕을 다 버렸다며 엄마에게 혼쭐이 나서 다시 방방 뛰다가는, 그냥 부모님과 닮은 것이려니 기분 좋게 살라는 아빠의 태평한 목소리에 약 올라 마지막 힘을 다해 방방 뛰다 지쳐 잠들었다.
다행히도 나이를 먹을수록 소금 냄새는 점점 가시는 듯 했다. 하지만 엉엉 울 때만큼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온몸에서 고루 났던 냄새가 죄다 두 눈으로 몰려, 집 밖에서 내가 눈물 한 방울만 흘렸다 하면 저 멀리 있던 사람들의 눈길까지 내게 쏠렸다. 결국 나는 오래 전처럼 돌아가 엄마를 배려하고, 더 나아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이번에는 울지 않는 법, 아니, 울어도 티가 덜 나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세면대의 물이 사해 한 바가지가 될 때까지 울어댄 다음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비친 눈두덩이 묵직해져 있었지만, 몸은 한층 가벼웠다. 주변을 떠다니는 공기는 각기 소금을 짊어지고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골랐다. 그리고 세면대 가에 소복한 비듬처럼 앉아있는 소금 알갱이를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 맛은, 사해를 한 모금 마신 마냥 아주 짰다. 아주, 정말로 아주 많이 짜서 나는 다시금 슬퍼지려 했다. 그래서 계속 물속에 고개를 박고 울고 소금기를 핥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울어도 울어도 마음이 좀체 개운해지질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금 전 현관문을 나선 엄마가 다시 집에 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몇 시간은 맘 놓고 울 수 있을 거란 점이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농도 짙은 소금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반쯤 기절하기 직전까지 정말 실컷 울었다. 간만에 지나칠 정도로 감정에 솔직해진 뒤, 나는 개운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몸을 방까지 끌고 와 쓰러지다시피 잠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거짓말처럼 아빠를 만났다.
밤
나는 어릴 적부터 잠 많고 밤귀도 어두웠다. 아무리 낯선 곳에서도 온몸이 바닥에 풍선껌처럼 들러붙고 나면 의식도 껌처럼 딱딱해졌다. 그럼 끈질기게 귓가를 배회하는 벌레소리도 술 취한 동네 아저씨가 밖에서 애국가 부르는 소리도 집 천장에서 쥐 기어 다니는 소리도 내 잠을 방해할 수 없었다. 이따금씩 밤마다, 이불을 목까지 쓰고 누운 내 머리칼을 부스스 헝클이며 아빠가 푸스스 속삭였다. 유수야. 너는 귀신이 나타나 업어가도 잘만 자겠구나. 그럼 나는 입꼬리를 히죽거리며 오늘만큼은 아빠보다 늦게 잠들겠다고 눈을 부릅떴다. …유수야, 자냐. 아니에요, 아빠. 아직 안자요. …유수야, 자냐. 아뇨, 진짜 하나도 안 졸리는 걸요. …에이, 두 눈이 감기고 있는 걸. 아니에요, 아빠! 나 오늘은… 오늘은 꼭……. 아빠의 목소리는 파도에 스러지듯 매번 희미해졌다.
그리고 거의 육 년 만에 나타난 아빠는 미안하단 말, 반갑단 기색 전혀 없이 꼿꼿이 서 있기만 했다. 시선도 내가 아닌 허공에 두고서, 두 팔을 양 옆구리에 바짝 댄 채 다리까지 일자로 모으고 있었다. 불편해보일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굳어 있어서, 내가 알던 개구쟁이 아빠가 맞는가 싶었다. 그래도 반가웠다. 얼른 다가가 떼쓰고 어리광 피우고 싶었다. 왠지 지금만큼은 엄마 걱정 하나 할 것 없이 부둥켜 안겨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못 말리는 천하무적 아빠가 우리 모두를 지켜줄 테니까.
아빠아. 아빠. 나는 아빠에게 가만가만 손을 뻗었다. 긴장해서 뻣뻣해진 손에게 조금만, 조금만 더, 애원하며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 순간, 온몸은 여전히 미동 않은 채 아빠의 눈동자만이 데구루루 굴러 나를 봤다. 그러자 내게서도 순식간에 반가움이 달아났다. 대신에 아빠처럼 온몸이 꼿꼿해졌다. 창문도 닫혀있는데 어디선가 싸한 바람이 불었다.
오지 마아. 다아쳐어. 꺼먼 눈동자가 시퍼런 입술을 대신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솨솨 고동치는 물살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뒤섞여 아빠가 들려줬던 많고 많은 설교들 중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유수야. 조오련은 물개 같은 수영선수면서 동시에 119수상구조대였어. 강이면 강, 바다면 바다, 얕고 깊은 물을 돌아다니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구하거나, 수심 저 아래에서 익사한 시체를 찾아냈지. 하지만 천하의 조오련도 절대 가까이 않는 게 있었어.
유수야.
혹여나 물속에서 시체가 신기할 정도로 바르게 서 있거든 절대 구하려 해선 안 된다. 시체가 우뚝 서 있다는 건 근방에 곧 커다란 회오리가 일어날 거란 징조야. 시체 저 밑에서는 사람들 몰래 부글거리고 있는 물살이 시체의 동무를 만들어줄 준비에 한창일 거란다.
목구멍이 불쏘시개처럼 따끔거렸다. 아빠! 소리치려는 찰나 기분 나쁘게 울렁거리는 뭔가가 성대를 막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나는 마구잡이로 손발을 휘적거리며 그것을 토해내려 헛구역질을 해댔다. 하물며 구역질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급해지는 마음에 다시 손이라도 뻗어볼 때였다.
아빠!
갑자기 아빠 바로 뒤에서 서슬 퍼런 파도가 산꼭대기처럼 일어났다. 목구멍의 통증은 이제 이글이글 타올랐다. 숨이 가빴다. 아빠, 저기요! 어서 저길 보세요! 제발, 빨리 봐야 하는데……. 그리고 손 써볼 틈도 없이, 나는 더 이상 헛구역질을 할 수도 아빨 부를 수도 잡을 수도 없었다. 눈을 비비고 났을 때 꼿꼿한 자세 그대로 아빠는 물살에 휩쓸러 가고 있었다. 너무도 태연하게, 꼭 썩은 고목 둥치처럼 말이다. 유일하게 움직였던 눈동자만이 물살을 요리조리 피하며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두 눈은 어느새 옛날 그 장난스럽던 모습처럼 선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는 곧 물에 녹아내리는 소금처럼 일그러져 사라졌다. 한차례 폭풍을 겪은 세상처럼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아빠의 자리에서는 물방울만이
또옥
똑
떨어지고 있었다. 오뚝이처럼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빠.”
꿈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야광별로 반짝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얼굴에 흐르고 있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두터운 눈꺼풀을 덮은 듯 정신이 몽롱했다. 시계는 아직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죽은 듯 잠들어있을 시간이었다. 허탈한 맘을 휘휘 쫓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방해받아 토라졌던 잠이 기다렸다는 듯 바로 밀려왔다.
또옥
똑
하지만 잠기운은 다시 산산이 부서졌다. 이번엔 저 멀리까지 단숨에 달아나버려 붙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코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한숨을 쉬었다가 곧바로 죽였다. 또옥. 똑. 낯설지 않은 소리가 한 번 더 고요를 깼다. 짧게 들렸다 끊기고는 내가 숨을 들이키거나 몸을 뒤척일 만하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부엉이처럼 예민해진 눈을 사방으로 굴렸다. 장롱과 책상, 액자와 달력… 그러다간 문득 내 옆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맙소사. 나는 재빨리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네 시에 잠긴 세상은 빛 한 줌 보이지 않았다. 또옥. 똑. 소리의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이내 투둑, 투둑, 대담하게 커져가기까지 했다.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황폐해진 입 안을 침으로 대충 헹군 뒤, 한 발짝씩 나아갔다.
“…엄마.”
“…….”
“뭐 하는 거야, 이 시간에?”
화장실 문을 열자 내 예상을 저버리지 않고 엄마가 나타났다. 김빠진 콜라처럼 다리가 풀리려 했다. 문간을 잡고 겨우 버티며 엄마를 불렀다. 분명 내 목소리가 들릴 텐데도 엄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멀겋고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벌 서는 어린아이처럼 울고만 있었다. 펑퍼짐한 엉덩이는 타일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채였다. 어젯저녁 내내 곱게 다렸던 상복이 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더럽잖아! 참지 못하고 나는 결국 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엄마가 나를 올려다봤다. 민낯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걸까. 탱탱 부어 거의 감긴 두 눈으로 날 제대로 볼 수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유수야….”
엄마가 자글자글한 입술로 중얼거렸다. 꾸물거리는 모양새가 억울하고 얄미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대답하지 않았다. 반대로 엄마는 내가 되어 유수야, 내 딸 유수야, 낡고 쉰 목소리를 냈다. 엄마의 상복은 타일 바닥 틈의 구정물을 모조리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온몸이 가려웠다. 그 중에서도 양 겨드랑이가 유독 심했다. 벅벅 긁고 싶었다.
“그만… 엄마, 이제 그만 울어도 돼. 집 왔잖아. 여기 우리집이라구.”
상갓집을 먼발치에 뒀을 때부터 이미 울고 또 울었을 엄마다. 상상만 했는데도 내 눈두덩이 욱신거렸다. 대곡자가 된 엄마는 어쩌면 생판 모르는 남들을 위해서만 울어주기 미안해 내가 흘릴 수 없는 눈물까지 대신하려는 건지 몰랐다. 지겹지도 않을까. 나는 엄마의 까슬한 손을 잡아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제발, 제발 좀 일어나, 엄마. 나는 상복을 잡아 뜯을 듯 막무가내로 당겼다. 그러자 엄마도 아직 안 돼, 아직은 안 돼, 막무가내로 버티며 마른 몸에 안간힘을 줬다. 난데없는 몸싸움이었다.
“…유수야. 아빠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힘 대신 허를 찌르는 말 한 마디에, 한밤 중 투맨쇼에서 패배한 사람은 결국 나였다. 나는 넋 빠진 듯 소복을 놓고 멍하니 엄마를 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제법 우아하고 자신만만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도도하게 눈을 치켜 올린 수도꼭지의 머리끄덩이를 끝까지 잡아당겼다. 비명을 지르듯 수도가 물을 쏟아냈다. 아빠는 저렇게 비 내리는 날에도 입술을 실룩대며 수영을 하고 있었다. 도무지 말릴 수 없었다. 유수야, 아빠는 조오련이 될 거야. 온 바다를 다아 가질 거야.
엄마는 이제 물소리도 커졌겠다, 마치 시합이라도 하듯 대놓고 울기 시작했다. 음정 박자 무엇 하나 맞지 않는 불협화음이 화장실을 울렸다. 나는 헬륨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다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날이면 날마다 풍부해지는 엄마의 감수성 앞에서 내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있었다.
아침 혹은 낮
다 마치지 못한 엄마 얘기를 위한 준비가 너무 멀리까지 왔다. 이미 말문을 튼 탓에 시시해져 버렸지만, 어쨌든 세상에서 제일 잘 우는 우리 엄마는 용케 특기를 살려 하루하루를 꾸리고 있었다.
가슴이 찌뿌듯했던 새벽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엄마는 방 한 구석에서 애벌레처럼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하룻밤을 새는 엄마의 하루는 언제나 해질녘에 시작되어 동틀 무렵 마치게 되니까. 등만 보이고 있는 엄마는 정말 의기소침한 꼬마와 다를 바 없었다. 엄마는 갈수록 작아지고 있었다. 몸이 말려있으니 오늘따라 더 그래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몇 시간씩 흘려대는 눈물이 몸의 수분을 앗아가는 듯했다. 한때 나만큼이나 어려 보였던 엄마의 얼굴이 어느 순간 갑자기 늙어버린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만신창이로 문고리에 걸려있는 상복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갔다. 한낮이나 한밤이나 사람 소리 거의 없는 집안에선 텔레비전 뉴스만이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나는 세숫대야에 상복을 퐁당 빠뜨렸다. 축축한 한숨이 도넛 연기처럼 떠다녔다.
내가 빨지 않으면 이 더러운 상복을 그대로 입고 또 집을 나설 엄마. 밤만 되면 가깝든 멀든 온 상갓집을 전전하는 엄마. 아는 집은 물론 생판 모르는 상갓집도 꺼리지 않는 엄마. 저쪽에서 눈물 값을 주지 않겠다는데도 굳이 찾아가는 엄마. 오지 말라 으름장 놔도 일단 가고 보는 엄마. 그래서 흠씬 맞고 오기도 하는 엄마. 전국을 쏘다니면서도 아는 것이라곤 언제나 눈물바다뿐인 엄마.
나는 가끔씩 혼자 자기 싫어지는 밤, 허연 양을 세는 대신 엄마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상상한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상갓집에 거의 도착할 쯤부터 엄마는 눈물을 쥐어짜고 울음을 흐느낄 것이다. 심장 약한 기사들은 엄마를 정신병자나 귀신 취급하며 내쫓기도 하겠지. 그러면 엄마는 아예 상갓집의 멀리서부터 차에서 내려 눈물을 준비할 것이다. 물수건을 짜듯, 미간을 접을 때마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엄마의 눈물샘은 절대로 마르지 않는다.
엄마는 상갓집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더 크게 흐느끼며 요란한 인사를 한다. 상복 차림에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우는 중년의 작은 몸뚱이. 알싸한 소금 냄새와 함께, 사람들의 이목이 단번에 모인다. 상갓집 분위기는 일순간 숙연해진다.
대체로, 엄마가 오기 전까지 상갓집 분위기는 우왕좌왕 지저분했을 것이다.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더 그런 법이다. 예의상 눈물을 짜기 시작했다가 얼마나 더 울어야 할 지 눈치 보기 바쁜 사람들. 애초에 상갓집 밥상이나 노리고 와서 술판까지 벌인 사람들. 이미 한참 전에 기진맥진해진 친지들. 그리고 시곗바늘이 ‘12’에서 만나는 순간 밀려들어오는 조문객들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틈을 타 얼굴만 잠깐 비추곤 연례행사처럼 서로 인사나 나누기 바쁘다. 이 모든 것들이 이루는 제일 혼잡한 시간이 자정이다. 엄마는 그 시각을 엄숙하게 다스리는 사람이다.
엄마는 수많은 부모와 조부모, 형제자매를 가지고 있다. 난생 처음 보는 영정사진도 단숨에 친지가 될 수 있다. 산 사람과는 친화력이 없지만 죽은 사람과는 곧잘 친해지는 엄마는 애처로이 그들을 찾으며 운다. 그 소리는 술에 반쯤 고꾸라진 사람들까지도 울적해지게 만들 정도로 구슬프다. 엄마는 그렇게 초상집에서 초상집다운 분위기를, 아니, 실은 그저 자신의 슬픔에 심취해서 울고 또 운다.
몇 시간 후 상갓집을 나오는 엄마의 손엔 상갓집을 머금은 슬픔의 정도만큼 봉투가 들려있다. 나는 울음을 파는 엄마가 나쁜 건지, 죽은 사람에게까지 인맥을 선물하려 울음을 사는 사람들이 나쁜 건지 도통 모르겠다. 분명 모두에게 잘못이 있을 텐데도, 늘 후자의 죗값까지 챙겨 먹는 엄마가 바보스럽다. 엄마. 엄마는 대체 언제까지 그 일을 할 거야?
조오련
상복을 빨아 헹군 뒤, 옷자락 끝을 비틀어 물기도 마저 짰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실력으로 빨랫줄에 상복을 널기 위해 거실로 나왔을 때는 여전히 텔레비전 뉴스가 한창이었다. 평소라면 이미 다른 프로그램이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단조롭고 삭막했던 앵커의 언성도 웬일로 높아져 있었다. 저만치 엄마가 뒤척이는 모습이 보였다. 때 아닌 소란이 반갑지 않아 나도 리모컨의 전원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였다. 간발의 찰나로,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어 쓸쓸히 잊히고 있었던 ‘조오련’과 엉겁결에 마주친 것은.
한국 수영의 큰 별이 졌습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가 고향인 전남 해남의 자택에서 오늘 오전 심장마비로 타계했습니다. 고인의 나이는 향년 쉰일곱이었습니다.
상복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이 풀렸다. 빳빳한 햇빛과 산들바람을 기다리던 상복은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너저분한 무명옷이 언뜻 파도에 불규칙하게 패인 모래사장같이도 보였다.
고인은 안타깝게도 내년에 다시 대한해협을 건널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놓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맞아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 한국인의 저력과 함께 60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보여주겠다. 내 수영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온몸을 던지겠다.”던 고인의 생전 약속은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오련. 조오련. 오랜만인데도 결코 낯설지 않은 그 이름이 혀를 굴렀다. 아빠는 결국 조오련 때문에 우리 집을 떠난 것이었다. 그랬던 조오련이, 아빠가 평생 꿈꿨던 이상이 죽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빠의 확실하지 않은 행방까지 별안간 죽음으로 단정된 것 같았다. 생전 조오련은 “내가 죽으면 사는 곳 주변에 묻어 달라. 사별한 부인의 묘도 옮겨 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이유도 알 수 없이 조오련이 원망스러웠다.
조오련씨의 장례는 교회,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조씨의 가족 등은 고인의 장례를 ‘대한수영연맹장’으로 치르기를 원했지만 수영연맹 측은 “관련 규정이 없고 고인이 수영계 일선에서 오래 떠나 있어 장례를 치르기 어렵다”며 고사했습니다.
앵커의 멘트가 한바탕 파도치고 화면이 바뀌었다. 조오련의 생가가 보이고 왠지 조오련일 것만 같은 사람이 들것에서 흰 천으로 덮인 채 앰뷸런스에 실리고 있었다. 가까이선 엄마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명과 듬직한 체격의 두 남자가 보였다. 조오련의 부인과 아들이었다. 그들은 한국 수영의 영웅이면서 집안의 영웅이기도 했을 조오련의 돌연사가 믿기지 않는 듯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아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던 이튿날 우리 집 같았다. 멍하니 화면을 보고만 있던 나는 갑자기 부인의 옷도 더러워지진 않을까 괜한 노파심과 함께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는 걸 느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때문에 뒤에서 뒤척이는 소리를 나는 미처 듣지 못했다.
“…유수야. 누가 이렇게 울어?”
어느새 엄마가 일어나서 내 뒤에 와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가리키려다가, 뒤늦게 당황해서 손사래쳤다. 어찌됐든 엄마가 조오련이라는 글씨를 봐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려 했지만, 도리어 리모컨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윽고 조오련의 가족이 사라지고, 다시 ‘조오련씨 타계’라는 헤드라인이 화면을 단단히 떠받들었다. 그 순간 나는 엄마의 눈썹이 위아래로 씰룩 파도쳤다가는 미간에서부터 눈 아래로 볼에서 입가까지가 차례로 떨리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의 표정이 그렇게 섬세할 수 있단 사실이 신기했고, 그래서 더 반갑지 못했다.
“유수야. 저 사람…….”
“엄마.”
“…저 사람이야. 저 사람… 그렇지?”
“으응. 맞아. 그러니까 엄마…….”
“조오……”
엄마의 입에 거품이 물리고 붓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눈이 뒤집혔다. 그 상태로 엄마는 누군가에게 멱살이라도 잡힌 채 밀려나듯 벽으로 뒷걸음질 쳤다. 입 밖으로 소리도 없이 모양으로만 성을 내며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울분과 핏물이 토하는 비명이 귓가를 울리는 것 같았다. 한참동안의 엄마의 미치광이 같은 모습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한국 수영의 영웅 조오련씨의 장례는 교회,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한국 수영의 영웅 조오련씨의 장례는 교회,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한국 수영의 영웅 조오련씨의 장례는 교회,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한국 수영의 영웅 조오련씨의 장례는 교회,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한국 수영… 영웅… 조오련씨… 장례… 교회, 가족장…….
별안간 텔레비전 화면이 번쩍이며 방전됐다. 엄마가 텔레비전을 끈 것이었다. 어, 엄마. 내가 벌벌 떨며 불렀을 때 엄마는 다시 원래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몸만 돌아왔을 뿐 온전히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엄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에 들어가서 문고리를 달칵이고 옷장을 헤집고 방안을 들쑤시더니 다시 거실로 뛰쳐나왔다. 엄마는 곧 땅에 엎어지다시피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그것은 상복이었다. 마르지도 못한 채 거뭇한 먼지가 도로 묻은 상복이었다. 엄마가 다리미! 다리미! 외쳐댔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만 있었다.
그 날 오후에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오련의 부인이 음독 자살시도를 했다고 했다. 부인은 죽기 직전 가까스로 발견되어 위기를 넘겼다. 병원으로 실려가 강제로 위세척을 하게 될 것이라는 그 여자가, 잠시 가엽게 느껴졌다.
엄마는 낮이 다 가도록 상복을 다리고 또 다렸다. 그 바람에 상복의 연한 천 곳곳이 바싹 타버렸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다렸다. 나는 엄마가 그 상복을 입고 어디로 가려는 건지 잘 알 수 있었다.
곰팡이
곰팡이가 다시 핀 것도 이사 온 이래 처음이었다. 나는 그것이 곰팡이일 거라곤 전혀 생각 못하고 몇 번씩이나 지나쳤다.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눈치 못 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겨드랑이에 나는 곰팡이라니. 샤워를 하던 중 그것이 멍도 얼룩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놀랐다.
잠시 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곧게 편 겨드랑이에 샤워기를 대고 우스꽝스레 서 있었다. 샤워기 물로 당장 씻어내려다가, 유난히 청청한 코발트색의 곰팡이를 보고 망설이는 중이었다. 곰팡이는 하늘과 땅을 한 품에 안고 있는 우유니 소금호수처럼 깨끗했다. 그대로 놔둬도 나쁘지 않을 듯싶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소금호수에서는 쉽게 길을 잃어 죽어나기 십상이라는 어느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안전해 보인다고 방심해선 안 될 테니까. 결국 아빠가 아빠고 조오련이 조오련일 뿐이었듯 곰팡이도 곰팡이일 뿐일 테니까. 나는 푸른 보호색으로 무장하고 있는 곰팡이를 애써 노려보며 샤워기를 틀었다. 물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곰팡이에게 다가갔다.
무서워하지 마. 나는 단지 너를 깨끗이 씻겨주려는 것뿐이야.
그리고 여태껏 내 생전의 가장 바보 같은 말을 중얼거렸을 때, 놀랍게도 곰팡이가 바들, 떨었다. 바닷물에 비친 햇빛이 바르르 몸을 떨듯 바들.
…아빠?
내가 왜 그때 곰팡이를 아빠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정말 세상 제일의 바보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랬기 때문에 더 이상 알 수도 없었다. 왜 샤워기의 물을 다시 끄고 말았는지. 끌 수밖에 없었는지를.
유수 네 말은 나를 사라지게 만들겠단 소리잖아.
마침내 곰팡이의 일렁이는 대답을 들었을 때, 어딘가 원망이 서려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급기야 샤워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머릿속에 아빠의 그 날이 멋대로 차올랐다. 바다에서 평화롭게 수영을 하고 있다가 근육이 굳어버리는, 혹은 때 이르게 찾아온 밀물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는, 아니면 꼿꼿이 서 있는 시체를 보고 구해주려다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물속에서 형체가 일그러지는 수십 명의 아빠가 어른거렸다. 뭔가를 씻어낸다는 것은 곧 그것을 파괴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는 결국 곰팡이를 씻어내지 못했다.
조오련의 장례를 치루는 해남은 집에서부터 거리가 꽤 됐다. 자정 전에 도착하려면 여유 있게 초저녁에는 출발해야 할 것이었다. 그 날 저녁 나는 겨드랑이에 찰싹 붙어 고맙다고 인사하는 곰팡이를 모른 척 하며, 엄마가 상복을 입고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앞에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갈 거야, 엄마.
이유를 물었다면 절대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빠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서라거나, 아빠가 버릇처럼 말했던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싶다는 것은 빤하고 상투적인 변명일 테니까. 엄마는 뜬금없는 내 고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참 나를 보더니 다행히도 고개를 끄덕했다. 그것이 완전한 승낙일 거라고는 나도 생각지 않았다.
해남으로 가는 기차에서는 태아일 적부터 내 일부를 지배했던 조오련을 만날 생각에 너무나 긴장해서,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계속 졸았다. 꾸벅꾸벅 내 고개는 지칠 줄 모르고 오르락내리락했다.
해남에 도착하기 전까지 엄마와 나눴던 대화는 몇 마디뿐이었다. 엄마, 엄마가 그때 화장실에서 말한 거 있잖아. …뭐? 아빠 보고 싶냐구 했던 거. ……. 응, 나 실은 아빠 무지무지 보고 싶어. 지금도 보고 싶어, 엄마. 아주 많이…….
아빠를 만났다는 얘기만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 그래도 적당한 비밀은 있어줘야 하는 법이니까.
김치 치즈 스마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건물은 작았지만 입구 주위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어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족장으로 치룰 것이라 했지만 조오련 선수의 이름값만큼이나 친지가 아닌 듯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카메라 장비까지 가져와서 민폐를 끼치는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엄마에게 울음을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뻔뻔스러웠다.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인파를 파고들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언제 다 지나갈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벌써부터 울기 시작해버린 엄마를 사람들이 알아서 슬금슬금 피해줬기 때문이다. 엄마의 눈물은 이전에도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여우처럼 꼬리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상상만 했을 뿐 처음으로 와본 장례식장에서 잠시 몸을 떨었다. 분위기는 훨씬 가라앉아 있었고, 차가웠다. 낯선 느낌이 팔뚝에 소름을 돋쳤다. 어렵지 않게 듣곤 하는 엄마의 울음소리마저도 유독 음산하게 느껴졌다. 온몸이 싸했다.
빈소에 들어섰을 때는 밖에서보다 훨씬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와 함께 진을 치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 광경은 조오련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남편을 보내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편할 수 없는 조오련 부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국화와 향냄새가 지독하게 코끝을 찔렀다.
부인은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대곡자 또한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모두가 외면하는 대곡자라는 직업을 어쩌면 아예 몰랐을 지조차 모른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곡과 동시에 부인은 물론 조오련의 두 아들의 어깨까지 흠칫 떨렸다. 엄마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엉엉 울었지만, 사람들은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하는 듯 눈까지 가리며 혀를 찼다. 곧 빈소에 닥친 상황을 알아챈 부인이 엄마에게 손가락질하며 미친년, 미친년, 소리 질렀다. 엄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계속 울었다. 오히려 내 눈가에만 경련이 일었다. 화를 참기 힘들었다. 잘못 없는 엄마를 미워하는 눈길들이 더 미웠다.
그 와중에 겨드랑이는 또다시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안 돼. 가만히 있어. 나는 들리지도 않을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제발. 그리고 부인을 흘끗 본 순간이었다.
부인 뒤에 있던 영정사진이 눈에 띄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봤을 때보다 더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가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국화송이와 잘 어울리는 미소였다.
조…오련. 갑자기 눈가가 시큰거렸다. 겨드랑이는 좀 더 과감하게, 부스스 몸서리쳤다. 엄마의 울음소리는 끝없이 처량해지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가 마치 엄마에게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리게 느껴져 더 속이 상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울 수 없었다. 울어서도 안 되었다. 아주 가까이에 엄마가 있었고, 고작 이런 일 때문에는 아빠 앞에서도 울기 싫었으니까. 용감해져야 했다. 하지만 슬픔은 이기적으로 북받쳐 올라왔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는 척 당황스런 기색을 숨기다가 결국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너무 웃겨요 엄마, 정말 즐겁지 않나요?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렇게 미친 듯 웃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늘했던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변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당연히 웃음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한 번 터진 웃음은 엄마의 울음처럼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 그 짧은 순간 왜 매일 밤 엄마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는지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웃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렸다. 웃느라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눈앞에선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와 조명이 번쩍였다.
그리고 솨아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보라가 몰아쳤다. 뜬금없는 한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을 때 나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있었다. 유수야! 옆에서 엄마가 나를 꼭 부둥켜안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또 한 번 물세례가 쏟아졌다. 우리는 사이좋게 함께 젖어버렸다. 곰팡이도 부들 떠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얼른 팔을 오므렸다.
괜찮아, 곰팡이야. 걱정하지… 아니, 하지 마요, 아빠. 우리는 어쩌면 이 모든 게 씻겨 간 데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육년 만에 안겨본 엄마의 품은 오래전 그 자궁처럼 여전히 따뜻했다. 덕분에 나는 입이 찢어져라 더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놀란 눈물 한 방울이 눈가로 새어나왔다. 곧 국화와 향냄새를 밀어내고 짭짤한 소금 냄새가 길게 목을 뺐다. 한때 누군가의 체취였던 그 냄새는 신나게 사방을 쏘다니며 흩날렸다. 그리고 내 눈물은 여전히 아주 짜디짰다. 아주, 정말로 아주 많이 짜서 나는 도무지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겨드랑이가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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