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완료해 주세요’… 기계 앞 멈춰 선 노인들
편리함의 상징이 만든 장벽, '디지털 소외'를 넘어 '사회적 단절'로

무인 단말기(키오스크)가 병원, 은행, 음식점 등 다양한 생활 공간에 확산하면서 주문과 결제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청년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이용자들에게는 편리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지만, 디지털 기술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에게는 거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정보 접근과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구조적 소외를 겪는 등 디지털 격차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5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1%에 달했지만 키오스크 활용 점수는 43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기기 사용 경험 부족과 낯선 환경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또한 60~79세 고령층의 65%가 디지털 미숙으로 불편을 겪었다고 답했는데, 이는 청년층 대비 5배나 높은 수준이다. 키오스크 이용 시 대기 중인 타인을 의식하는 부담감이나 익숙하지 않은 화면 구성 등이 서비스 이용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 변화는 고령층의 정서적 고립 문제와도 깊이 맞물려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독거노인 가구 수는 처음으로 200만 가구를 넘어섰으며, 65세 이상 고령층의 43.4%는 평소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과거에는 은행 창구나 식당 등 일상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면 서비스가 고령층의 주요 소통 창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무인 시스템 도입이 확대되며 대면 접촉 기회가 단절되고, 키오스크 사용에 지쳐 아예 매장 이용을 포기하는 사례마저 발생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소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도 본격화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올해 1월부터 시행된 '디지털 포용법'이다. 이 법안은 디지털 서비스를 원활히 활용할 권리를 보장하며, 복잡한 시스템에 의한 소외를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명확히 규정했다.
아울러 전국 69곳으로 확대된 'AI 디지털 배움터'와 정보 접근이 어려운 지역을 직접 찾아가는 '에듀버스'를 통해 실생활 중심의 디지털 활용 교육이 진행 중이다. 글씨 크기를 키우고 외래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디지털 접근성 UI·UX 가이드' 도입도 추진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기술과 돌봄을 결합한 지원책이 확산하는 추세다. 일본은 돌봄 로봇과 스마트 센서를 활용해 요양 부담을 덜고 있으며, 유럽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스마트홈으로 고령자의 독립적인 생활을 돕고 있다. 국내에서도 AI 반려 로봇 도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사람 간의 정서적·신체적 돌봄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디지털 전환의 진정한 가치는 기술 확산 자체를 넘어, 다양한 세대가 실제 생활 속에서 불편 없이 이를 누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범용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적용 확대는 물론, 경로당·복지관·지역 사회를 촘촘히 잇는 '디지털 멘토링 연대망' 구축과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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