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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여왕이 선사하는 사치스럽고 유려한 미의 향연 <멜랑콜리아>

정은해 선임기자
- 5분 걸림 -

칸의 아성은 많은 이름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매년 상영되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개 비슷한 감독의 이름들이 거론된다. 말하자면, 칸은 자신이 발견한 감독들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주목하고 싶어한다. 우리 영화계에서 칸에 진출했던 박찬욱이나 이창동, 임상수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커스틴 던스트에게 여우주연상을 선사했던 영화 ??멜랑콜리아??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도 역시 순혈의 칸 키드이다.

   
 
??멜랑콜리아??는 첫째로 우울증을 의미한다. 18홀의 골프장이 딸려 있는 대저택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 저스틴은 만성적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녀의 우울증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영화는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는 여성편력이 지나쳤고 그러다보니 어머니는 결혼뿐만 아니라 가족 제도 자체에도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결혼식에서도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유혹하느라 바쁘고 어머니는 축사 대신 저주를 퍼붓는다. 그녀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부모님뿐만이 아니다. 하객으로 참여한 회사의 보스는 계속 그녀에게 광고 카피를 내놓으라고 조른다. 결혼식에서마저 그녀는 카피라이터로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결국 저스틴은 한계를 느끼고 결혼식을 포기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마침내 신랑마저도 그녀를 떠난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가까스로 자신이 맡은 임무, 결혼식을 끝내고 싶지만 한 번 고개를 내민 우울증은 그녀를 잠식하고 만다. 그녀의 우울증은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어의 죽음??과도 같은 이미지로 변주된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저스틴은 직접 그 그림을 보고 배치를 바꾸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멜랑콜리아??가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1부가 저스틴의 결혼식이었다면 2부는 언니 클레어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클레어는 저스틴의 결혼식 내내 가장 안정적이며 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동생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치러 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흔들리는 여동생을 도와주려 애쓴다. 하지만 2부에서 그녀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 태양계에 진입한 혹성 “멜랑콜리아”가 지구와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멜랑콜리아가 지구와 충돌한다면 이는 곧 지구 대재앙 혹은 멸망을 이끌 것이다. 저스틴이 자신의 내부에서 제어되지 않는 멜랑콜리아(우울증)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클레어는 자신의 안정적 삶의 궤도를 침범하는 외부적 충격 때문에 힘들어 한다. 영화의 초반부 몽환적이며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구성된 8분여간의 시퀀스는 이런 두 사람의 내면과 공포를 형상화하고 있다. 저스틴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신을 동여맨 밧줄들에 허덕이고 있다면 클레어는 무릎까지 빠지는 풀밭 사이를 아들을 안은 채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초반 장면 내내 흐르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은 여러 가지 점에서 암시적이다. 우선, 라스 폰 트리예는 대재앙을 바그너의 음악에 실어 매우 로맨틱한 분위기로 연출하고 있다. 이는 바그너가 트리스탄의 죽음을 일컬어 “마침내 죽음으로 인해 찾게 된 마음의 평화”라고 말했던 것과 유사하다. 지구 대재앙, 파멸과도 같은 극단의 상상력 가운데서 라스 폰 트리예는 평화와 낭만을 발견한다. 죽음 같은 평화, 그가 “멜랑콜리아”를 통해 하고픈 주제적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칸의 두 여왕, 커스틴 던스트와 샬롯 갱스부르의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중추적 동력이다. 그녀들은 우울증과 공포라는 매우 심리적인 국면을 연기로 번역해내는 데 성공한다. 바그너의 음악과 초현실주의적 미술이 주는 미적 쾌감도 만만치 않다. 아마도 칸 영화제 수상작을 만나는 기쁨은 이런 것 아닐까? 아주 사치스럽고도 수준 높은 예술품을 만나는 기회, 산업으로서의 대중 영화의 시대에 자주 접할 수 없는 기회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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