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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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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영국이라는 나라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중학생 때였다. J.K.롤링의 ‘해리 포터’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어가고 있을 무렵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거기에 푹 빠져있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판타지 책이나 읽고 있다며 눈치를 주는 어머니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영어로 된 원서를 구입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 ‘해리 포터’의 나라가 영국이라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배경에 이끌리고 더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나는 영국에 이끌렸고 이때의 원동력이 지금의 과에 입학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마침 처음으로 세계사를 배우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연도를 외우는 것에 약했지만 굵직한 사건들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로 내가 제일 열광했던 과목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처음 접하는 유럽 이야기들을 가장 좋아했었다. 거대한 제국이 건설되었다 분열되어 소멸하고 위대한 영웅이 반짝였다 한 순간에 몰락하는 이야기들은 현실감이 없었기에 한편의 거대한 영화나 책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수업을 들었던 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영국이었다. 처음으로 엘리자베스 1세를 알게 되었고 산업혁명을 배울 때는 이야기가 절정으로 흐르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영국은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굉장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나라였다. 지금도 영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때는 더했다. 단순히 세계사 시간에 조금 배운 영국 역사와 좋아하는 소설책들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영국이라는 나라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열광적이었을 수 있었는지 내 자신이 신기하다. 그 때의 영국은 나에게 미국과 일본보다는 훨씬 멀게 느껴지는 나라였고 ,그만큼 나는 영국에 대해 무지했다.

대학에 들어와 William Blake 의 'London' 을 읽고 이를 알게 되었다. 세계사 시간에 이야기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던 런던의 산업혁명은 그 당시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빈곤에 시달리며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단순히 시대가 격동하는 에너지에만 끌려 막연하게 동경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간접적으로 듣고 알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있는 것은 항상 아름답게 보인다.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것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시간적으로 다시는 역행 할 수 없는 중세, 근대는 어떻겠는가?

18C의 런던도 21C의 런던도 내게는 너무나 멀리 있다. 만약 내가 미국과 일본처럼 한번이라도 영국을 다녀왔다면, 다녀온 이후에도 영국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 남아있었을 지는 미지수이다. 나는 지금까지 영국이라는 나라, 런던이라는 도시를 단편적인 것들만 보며 상상했고 내 상상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멀리 있었기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으로 채워 넣으며 영국에 대한 나만의 고정관념이 생겨난 것이었다.

앞으로 내가 마주할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의 영국과 같을 것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통보다는 지금 나에게 닥친 사소한 문제들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고정관념이 생기고 무의식적으로 차별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았기에 스스로 더욱 주의해야 함을 안다. 이제 나는 막연한 동경만으로 영국을 보는 것이 아닌, 내가 영국에 대한 것을 알아갈수록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내가 들었던 것, 배웠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 직접 경험하여 감탄하고 실망도 하고 싶다. 이와 같이 앞으로도 마주칠 수많은 것들을 겉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멀리 있는 것을 아름답게만 보려 하지 않고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행동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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